▲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흔히 펜의 부드러운 힘이 칼의 권력보다 강하다고 하지만 말과 글이 사람을 베는 흉기가 될 수 있다. 평정심을 갖고 말과 글을 경계하지 않으면 그들이 고삐 풀린 칼춤을 춘다.
최근 대전 대덕구청장은 지속적으로 자신을 비방하고 인신공격했다며 네티즌 두 명을 모욕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피소를 당한 네티즌들은 대덕구청장을 '시정잡배', '꼴통', '땡깡쟁이', '정신병자', '인간 말종'이라고 비난하는 댓글을 달았다. 이들 댓글은 거의 대부분 대전시나 대덕구의 정책을 보도하는 인터넷 신문의 기사에 붙여졌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그 중 한 명은 대전시 현직 정무부시장으로 밝혀졌다. 그동안 대전시와 대덕구는 무상급식과 도시철도 2호선 건설 문제 등을 놓고 서로 갈등을 빚기도 했다. 김인홍 정무부시장은 그저께 기자회견을 갖고 '댓글 논란'에 대해 시민들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김 부시장은 자신이 쓴 익명의 댓글은 자신의 소신을 피력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의 댓글은 비방이나 악플이 아니라면서 자신이 게시하지 않은 것까지 일방적으로 매도당하고 있다고 억울해 하였다. 사건의 진위와 법적인 책임은 수사나 재판을 통해 소상히 드러나겠지만 지금까지 보도된 내용만 보더라도 대전에 주거를 둔 시민으로서 대단히 착잡하다.
일반 시민이 구청장의 정책을 다루는 신문기사에다가 댓글을 달고, 구청장을 일컬어 '시정잡배, 꼴똥'이라고 표현했다면 구청장으로서는 듣기 거북하고 모욕스럽더라도 참고 견뎌야 한다. 고위 공직자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 시민이 대전시 정무부시장을 '시정잡배, 꼴통'이라는 댓글을 신문기사에 달았더라도 마찬가지다. 광역자치단체의 정무부시장은 서열 두 번째의 최고위직 공직자인 까닭에 그의 시민들이 던지는 모욕적 표현을 견뎌내야 할 인내의 벽도 그만큼 더 높아야 한다. 그런데 그 댓글을 작성한 시민이 다름 아닌 구청장이나 광역시 정무부시장의 지위에 있는 공직자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댓글도 그 자체로 훌륭한 저널리즘 수단이 될 수 있고, 고위 공직자도 댓글을 이용해 여론 형성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대전시는 홍보활동과 공적 토론을 이끌 수 있는 무기를 아주 많이 가지고 있다. 기자회견을 할 수 있고, 신문과 방송에 보도자료를 보낼 수 있고 홈페이지에다가 의견을 게시할 수도 있다. 시정소식지나 소셜네트워크를 가동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정과 대립한다고 해서 시정의 최고위직을 수행하는 공직자가, 익명의 장막 뒤에 숨어 다른 자치단체의 장을 댓글로 인신 모멸하는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문제가 된 표현과 방법들을 보건대, 말이 되기엔 너무 짧고 글로 봐 주어도 대단히 거칠다. 욕설을 담지 않았더라도 상대를 안심시키려고 어제 굳게 약속했던 말들을, 오늘에 이르러 간단히 뒤집어버리는 언사 역시 거칠다 아니할 수 없다.
그동안 우리 지역의 언론이 좀 더 적극적으로 지역정부의 정책을 감시·견제하면서 지역정부 종사자들로 하여금 정책에 대한 비판을 견뎌낼 수 있는 내공을 일상적으로 키워주었더라면, 시민을 한없이 부끄럽게 만든 이런 류의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내처럼 묻는다. “언론 씨 어디 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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