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마음이 머무는 곳… 영원한 순례자의 안식처

기도하는 마음이 머무는 곳… 영원한 순례자의 안식처

주민들이 박해를 피해 살았던 기리시탄 동굴, 벽 내부 십자가를 새긴 흔적도 여전히 남아 일본인 최초 신부가 된 '시마다 키조'를 기념하기 이해 에부쿠로 성당 지어

  • 승인 2014-03-06 14:05
  • 신문게재 2014-03-07 9면
  • 한성일 기자한성일 기자
●가톨릭 역사 탐방 -2.일본 나가사키현 고토열도 기도의 섬에 가다

지난주 1편에 이어 김정수 신부의 고토 열도 성지 순례 여정 다음 행선지를 따라가본다. <편집자 주>

▲기리성당
▲기리성당

▲가미고토 가톨릭 성지순례-신카미고토초를 찾아서=신카미고토초는 일본 나가사키현의 서쪽에 위치한 고토열도 북부에 자리잡고 있다. 십자가 모양의 7개의 유인도와 크고 작은 60개의 무인도로 이뤄져 있고,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지형으로 서해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바다와 해수욕장은 투명하고 선명한 에메랄드빛으로 빛나 매우 아름답다. 마치 우리나라의 다도해를 연상케 하는 바다풍경이다.

나가사키현은 일본 기독교의 원점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순례지로 알려져 있지만 나가사키에서 약 100㎞ 떨어지고, 네덜란드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그림처럼 예쁜 관광지 '하우스텐보스'로 유명한 사세보에서 약 70㎞ 떨어진 신카미고토초는 의외로 모르는 사람이 많다. 고속선으로 약 1시간 30분을 달리면 도착하는 곳이다. 파도가 센 지역이라 배를 타면 배 멀미 방지를 위해 잠을 자며 갈 수 있도록 모포와 베개가 준비돼 있다.

나가사키현 전체에 138개의 성당이 있고, 40% 가까이 되는 53개의 성당이 고토 열도에 분포돼 있다.

박해가 끝난 이후에는 신자들이 모여 살던 곳곳에 성당이 세워져 섬 전체가 하나의 성지로 이뤄진 지역이다. '기도의 섬, 신앙의 땅'이라고 불리는 신카미고토초는 29개의 성당이 대부분 바다와 마주보고 있다.

이곳은 현재 거주민의 25% 이상이 가톨릭 신자로, 와카마쓰 지역에는 숨은 기리시탄이 전통을 계속 지키고 있는 공동체가 아직까지 자리잡고 있어 반드시 가볼만한 가치가 있는 성지다.

성당 건축 역사에 수많은 업적을 남겼던 가미고토 출신 건축가 데스가와 요스케가 설계하고 시공한 가시라가시마 천주당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 리스트에 등재돼 있고, 아오사가우라 천주당은 국가지정중요문화재에 등록돼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10월과 12월이면 가미고토 성당순례와 가미고토 성당음악회가 열린다. 신카미고토초는 풍력 발전을 비롯해 환경 보존을 위한 전기자동차로 성당 등을 순회할 수 있다. 또 사누키, 이나니와와 함께 일본의 3대 우동으로 불리는 고토 테노베 우동은 날치알 육수국물이 구수하다. 특히 이 곳 특산품인 동백기름과 천일염을 써서 면발이 쫄깃거리고, 윤기가 있고, 순하고 부드럽다. 이 곳에서는 고토 우동과 더불어 약 400년전부터 시작된 가미고토의 고래잡이(포경) 덕분에 관혼상제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일품 요리가 된 다양한 요리법의 고래 요리와 동백기름을 사용해 만든 시세이도 샴푸와 린스 등을 만나볼 수 있다.

가을인 10월11일부터 12일까지는 제9회 가미고토 성당순례와 워크&크루즈 행사가 열리고, 겨울인 12월9일부터 14일까지는 가미고토 성당음악회가 열릴 예정이다.

▲기리시탄 동굴
▲기리시탄 동굴
▲기리시탄 동굴=일본에서 가톨릭 신자를 뜻하는 기리시탄은 포르투갈어 '크리스타오'에서 유래했다.

와카마쓰항에서 해상 택시를 10분 정도 타고 가면, 그 당시 박해를 피해 숨어 살았던 동굴을 순례할 수 있다. 일명 '기리시탄 동굴'로 불리는데 파도가 조금만 세계 쳐도 배가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다.

금교령이 내려졌던 메이지시대때 엄청난 박해와 탄압을 피해 필사적으로 신앙을 지키려던 세 가구가 몰래 도망쳐 나와 배를 타고 갈 수밖에 없는 동굴에 들어와 생활한 곳이 바로 이 기리시탄 동굴이다. 기리시탄(크리스찬) 동굴은 높이 5m, 폭 5m, 길이 50m로 십자가형 구조로 돼 있다. 동굴 바깥에는 가쿠레 기리시탄(숨은 기리시탄)들이 불을 피워 지냈던 자리가 고스란히 남아 있고, 동굴 내부는 의외로 넓어 벽에는 성모상을 모시고 십자가를 새겼던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남아있다.

배로 밖에 갈 수 없는 중요한 경관인 바늘구멍 바위는 고토 사투리로 '하리노멘도'라고 불리는데, 기리시탄 근처의 바늘 구멍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보인다고 해서 순례자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다.

순례자들은 1967년 시련과 고통을 견디고 신앙을 지켜온 선조들을 기념하기 위해 동굴 입구에 높이 4m, 십자가 3.6m에 이르는 대형 그리스도상을 세웠다. 그 당시의 기리시탄들을 위해 매년 11월에는 다이노우라 성당의 신자들을 중심으로 100여명이 이 장소에 모여 미사와 기도를 드리고 있다. 기리시탄 동굴 근처는 파도가 평소보다 약간만 높아도 접근할 수 없는 험한 지대에 위치해 있어 악천후에는 순례 자체가 어렵다. 그 당시 이 곳에 숨어 살았던 기리시탄의 후손들이 아직도 와카마쓰에서 선조들의 신앙을 지키며 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신카미고토초의 성당들=아리카와 지구의 가시라가시마 천주당은 국가지정 중요문화재와 세계유산잠정목록으로 등록돼 있다. 1887년에 지어진 이 성당은 신자들이 손수 자른 사암(모래가 물속에 가라앉아 굳어진 바위)을 쌓아 올려 만들어 일본에서 보기 드문 석조 성당이다. 낮에는 노동과 봉사를 하고, 밤에는 생활을 위해서 바다로 나가 고기잡이를 했던 신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지어진 이 성당은 현재 소수의 신자에 의해 기도 장소를 지키고 있다.

올해로 창립 104주년을 맞는 가미고토 지구의 아오사가우라 성당은 데스카와 요스케가 벽돌로 지은 세번째 성당으로, 성당 입구 상부에 원형의 장미 모양 스테인드글라스가 우아한 빨간 벽돌 성당이다. 국가지정 중요문화재로 선정됐다.

신우오노메 지구의 에부쿠로 성당은 바닷가를 앞에 두고 있어 전망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마을 지정문화재이자 현지정유형문화재다.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급경사에 지어진 성당은 고토 열도에서 최초로 일본인 신부가 된 시마다 키조 신부를 기념해 고향땅에 건립됐다. 나가사키현 내에서 가장 오래된 변형 성당으로 2007년 화재에 의해 소실됐지만 3년 후 복원됐다. 곳곳에 화재 흔적이 남아있도록 원형을 해치지 않고 복원하느라 더 경비가 소요됐다고 한다.

아리카와 지구의 다이노우라 성당은 성당 부지 내에 옛 성당과 현 성당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 곳으로 풍경이 매우 아름다운 곳중의 하나다.

성당을 둘러싼 산 중턱에는 탐스러운 황금빛 오렌지가 나뭇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성모마리아상을 중심으로 순교자들의 동상이 서 있는 야외 미사 공간도 마련돼 있다.

다이노우라 성당 부지의 옛 성당은 다양한 기독교 관련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1870년 다이노우라의 다카스 지역에 사는 신자 집에 어느날 밤 갑자기 4명의 무사가 들이닥쳐 새 칼을 시험한다는 이유로 임신한 여인을 포함해 6명을 무참히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옛 다이노우라 성당 뒤쪽 산 중턱에 6명을 위로하는 참살 묘비가 세워져 있다. 성당 부근에는 1885년 당시 다이노우라 성당 사제인 브렐 신부의 바다 순교비가 있다. 이 곳은 가미고토의 선교와 포교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와카마쓰 지구의 나카노우라 성당은 1925년에 지어진 목조성당이다. 가스펠 요사쿠의 출신지라는 이유로 심한 박해를 받았던 곳으로, 목조성당으로서는 드물게 높은 종탑이 세워졌다. 내부에 줄지어 선 기둥 위쪽 부분의 하얀 벽에는 고토 특산 동백꽃을 모티브로 한 장식이 새겨져 있고, 천장에도 꽃모양이 장식돼 있어 매우 아름답다. 해변에 비치는 모습이 선명해 '물거울성당'이라 불린다.

일본 신카미고토초=한성일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부산 광안리 드론쇼, 우천으로 21일 변경… 불꽃드론 예고
  2. 천안시, 맞춤형 벼 품종 개발 위한 식미평가회 추진
  3. 천안시 동남구, 빅데이터 기반 야생동물 로드킬 관리체계 구축
  4. 천안도시공사, 개인정보보호 실천 캠페인 추진
  5. 천안의료원, 공공보건의료 성과보고회서'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1. 천안법원, 지인에 땅 판 뒤 근저당권 설정한 50대 남성 '징역 1년'
  2. 충청권 부동산 시장 온도차 '뚜렷'
  3. 천안시, 자립준비청년의 새로운 시작 응원
  4. "마을 앞에 고압 송전탑 있는데 345㎸ 추가? 안 됩니다" 주민들 반발
  5. 백석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협력…지역 창업 생태계 활성화 기대

헤드라인 뉴스


[지방자치 30년, 다음을 묻다] 대전·충남 통합 `벼랑끝 지방` 구원투수 될까

[지방자치 30년, 다음을 묻다] 대전·충남 통합 '벼랑끝 지방' 구원투수 될까

지방자치 30년은 성과와 한계가 동시에 드러난 시간이다. 주민과 가까운 행정은 자리 잡았지만, 지역이 스스로 방향을 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구조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제도는 커졌지만 지방의 선택지는 오히려 좁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인구 감소와 재정 압박, 수도권 일극 구조가 겹치며 지방자치는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지금의 자치 체계가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 아니면 구조 자체를 다시 점검해야 할 시점인지에 대한 질문이 커지고 있다. 2026년은 지방자치 30년을 지나 민선 9기를 앞둔 해다. 이제는 제도의 확대가..

대전 충남 통합 내년 지방선거 뇌관되나
대전 충남 통합 내년 지방선거 뇌관되나

대전 충남 통합이 지역 의제로선 매우 이례적으로 정국 현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내년 지방선거 뇌관으로 까지 부상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정부 여당이 강력 드라이브를 걸면서 보수 야당은 여당 발(發) 이슈에 함몰되지 않기 위한 원심력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6월 통합 단체장 선출이 유력한데 기존 대전시장과 충남지사를 준비하던 여야 정치인들의 교통 정리 때 진통이 불가피한 것도 부담이다.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8일 대전 충남 민주당 의원들과 오찬에서 행정통합에 대해 지원사격을 하면서 정치권이 긴박하게 움직이..

정부, 카페 일회용 컵 따로 계산제 추진에 대전 자영업자 우려 목소리
정부, 카페 일회용 컵 따로 계산제 추진에 대전 자영업자 우려 목소리

정부가 카페 등에서 일회용 컵값을 따로 받는 '컵 따로 계산제' 방안을 추진하자 카페 자영업자들의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매장 내에서 사용하는 다회용 머그잔과 테이크아웃 일회용 컵 가격을 각각 분리한다는 게 핵심인데, 제도 시행 시 소비자들은 일회용 컵 선택 시 일정 부분 돈을 내야 한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2026년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2027년부터 카페 등에서 일회용 컵 무상 제공을 금지할 계획이다.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최근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 컵 따로 계산제를 탈 플라스틱 종합 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동지 팥죽 새알 만들어요’ ‘동지 팥죽 새알 만들어요’

  • 신나는 스케이트 신나는 스케이트

  •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