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국 건양대 창의융합대학 교수 |
좋은 직장에 취업해야 한다는 마음이 그들의 어깨를 내리누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대학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바로 취업이다. 적지 않은 학부모들은 대학을 선택할 때 이 점을 중시한다. 자신들의 아이들을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에 넣을 때부터 이 취업이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요즘같이 취업이 힘든 때 이러한 모습은 매우 당연하게 여겨질 수 있다. 그러기에 학생들은 시험 성적이 개인의 존재 가치로 매겨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오랜 시간 자유롭지 못한 생활을 해왔던 것이다.
사회적으로 학생들의 개성과 적성에 맞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교육 일선에서 이런 방향으로 교육과정이 바뀌고 있지만 실제 학생들은 실감을 잘 못하고 있다. 대학 입시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성적 올리기에 집중하느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억제했던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왔다고 해서 그것을 금방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습관은 관성을 가지고 있다. 학생들의 억눌린 마음을 풀어주고 그들이 자신의 소질과 가능성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도 이제는 대학이 떠맡았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춘추시대 초기의 정치가요 사상가인 관중(管仲)은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십년의 계책으론 나무를 심는 것만한 것이 없고, 일생의 계책으론 사람을 키우는 것만한 것이 없다. 한 번 심어서 한 번 거두는 것은 곡식이고, 한 번 심어서 열 번을 거두는 것은 나무이며, 한 번 심어서 백번을 거두는 것은 사람이다.(十年之計, 莫如樹木. 終身之計, 莫如樹人. 一樹一穫者 穀也. 一樹十穫者 木也. 一樹百獲者 人也.)” 이 말에서 “교육은 국가의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다.”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는 듯하다. 이렇듯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계획은 백년 앞의 미래를 내다보고 그 변화를 예측해서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말이니, 여기에는 세상을 관찰하는 안목과 신중함이 요구된다 하겠다. 그러한 계획 속에서 현재의 인재를 양성할 목표가 정해지는 것이고 그것을 달성할 방법을 강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그리고 미래에 어떤 인재를 필요로 하는가?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이 말은 시대를 초월하여 되풀이 돼온 질문이다.
지금의 입시만능주의는 우리들의 아이들에게 지식 이외의 모든 것에 대한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집안에서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에 대하여 그 '관계 맺기'에 낯설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실제 하지도 않은 봉사활동도 서류상 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런 현실이다. 그리고 낯선 관계 속에서 아이들은 계속 혼자만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 이웃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 자신의 처신을 조심하고 믿음을 갖게 하는 행동 등에 익숙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 익숙하지 않은 마음과 행동을 학생들이 지니고 하기를 바라는 것, 그들이 배운 지식을 사회를 위해서 베풀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나 지나친 요구일 것이다.
현재 대학은 특히 많은 지방대학은 생존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그 어려움 속에 있다 하더라도 대학은 이들이 정녕 다른 이들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소질과 가능성을 찾아 자신의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 준비하는 그런 곳이 되어야 한다. 물론 이들이 평생 경쟁을 피할 수는 없지만, 진정 타인을 배려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희망을 주는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 인간미 넘치는 전문가가 되도록 말이다. 그것이 학생과 대학이 공생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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