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춘아 한밭문화마당 대표 |
작년 연말 지역문화진흥법이 제정되었다(2013. 12. 31.). 문화부가 2001년 지역문화의 해 사업을 통해 '지역'의 개념을 새롭게 재정립한지 14년만이다. 그동안 지역문화진흥법 제정을 위한 문화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무산되었다가 법추진의 실행주체는 양보하고 통과되었다. 제정된 지역문화진흥법에는 새로운 용어가 들어갔다. '생활문화'란 용어다. 지역주민의 문화예술 향수 및 창조활동 참여 활성화를 위한 지원 등의 조항이 '지역의 생활문화진흥'이라는 이름으로 한 장을 차지하고, 그 안에 생활문화 지원, 생활문화시설의 확충 및 지원, 문화환경취약지구 우선 등의 조항들이 포함되었다.
'생활문화'란 지역의 주민이 문화적 욕구충족을 위하여 자발적이거나 일상적으로 참여하여 행하는 유형ㆍ무형의 문화적 활동이라고 이 법에서 정의하고 있다. 90년대에 '문화복지'라는 단어가 정책용어로 만들어졌을 때 문화와 복지라는 단어가 어떻게 어울릴 수 있는지, 문화로 복지한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 이제 어디가나 흔한 용어로 자리 잡았다. 생활문화 역시 생활이 예술이다, 라는 말을 흔하게 하며 문화가 밥 먹여주는 시대가 된 것이다.
1992년 여성들의 문화활동 현황 조사를 하면서 자신들의 소중한 꿈을 위해 노력하는 여성들을 보았다. 2003년 다시 조사했을 때 그들 중 누군가는 강사가 되어있었다. 여성회관이나 도서관, 문화센터 등에서 여성들을 문화소비자로서가 아닌 문화생산자로 대접하며 프로그램을 했더라면 2003년 조사 때 그보다 훨씬 많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을 전문가들이 만들어졌을 것이고, 오늘의 문화수준을 업그레이드시켰을 것이라 반성하며'여성들이여 문화소비자에서 문화생산자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여기저기 말하고 글 쓰고 다녔다.
문화시설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을 교육, 학습의 대상으로 각종 강좌를 소비하는 사람이 아닌 문화창조의 고객으로 보고 요즘말로 맞춤형 프로그램을 미리 준비했더라면 오늘의 문화판도는 달라졌을 것이라 봤던 것이다. 우리의 전설적 스토리에는 도사 밑에서 청소하고 밥하며 내공을 쌓다가 하산하는 시기가 있었는데, 요즘은 끝없는 학습이 강요되다보니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강좌 소비자가 더욱 늘었다. 전 국민이 어렸을 때부터 학원으로 문화센터로 강좌 학습을 받으며 하산할 시기를 주지 않는다.
일본의 가나자와 시와 도시협약을 맺고 있는 전주에서 가나자와의 '시민예술촌'과 유사한 '시민놀이터'를 오랫동안 준비하여 작년 3월에 개관하여 운영중이다. 24시간 시민들의 문화활동 공간으로 제공된다. 학습용 강좌가 아닌 주민들이 함께 놀면서 문화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다. 문화부는 지역의 복합문화커뮤니티 공간을 지원할 계획이다. 기존의 시설을 리모델링하기도 하면서 지역민들의 자유로운 문화예술동아리 활동을 권장하게 된다.
전국적으로 문화시설 또는 잠재적 문화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는 공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관리의 차원에서 접근성이 제한되고 있다. 이를 풀어줄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직원이 아닌 지역민들에게 쉽게 시설의 열쇠를 맡길 수 있는 구조가 아직은 아니라는 점이다. 24시간 체제는 아니더라도 저녁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공간만 열어주어도 생활거주권내에서 문화공동체 활동이 좀더 활발해질 것이다. 공공도서관에서 저녁 6시 이후에는 책을 빌릴 수 없었는데, 요즘은 저녁시간에 책도 보고 빌릴 수 있게 되면서 얼마나 풍요로운 느낌이 들었는지를 떠올려보면 저녁시간 친구들과, 이웃들과 가족들과 춤추고 악기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가까이 있다면 그 느낌은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그게 문화도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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