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광수 한국은행 대전충남본부장 |
미 연준은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책금리를 제로금리 수준까지 떨어뜨렸으나 위기 상황이 지속되자 미 국채 등을 매입해 유동성을 직접 공급하는 양적완화라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수단을 사용하게 되었다. 2011년 6월까지 두 차례 걸쳐 양적완화정책을 펼쳤지만 실물경기가 기대만큼 회복되지 못했다. 이에 2012년 9월 이후 매월 400억달러의 주택담보부증권(MBS)을 매입하는 세번째 양적완화정책을 실시했으며 2013년 1월부터는 추가로 매월 450억달러의 장기국채를 매입했다.
이러한 정책적 노력에 힘입어 미국 경제가 회복 움직임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러나 양적완화를 통해 과도하게 공급된 유동성은 경기가 본격 회복되면 물가 급등과 같은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그 이전에 양적완화규모를 줄여나가야 한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벤 버냉키 의장은 지난해 6월 통화정책방향을 결정하는 공개시장조작위원회(FOMC) 회의 후 미국의 경제상황 개선 추세가 예상처럼 지속될 경우 연말 이전에 테이퍼링을 시작해 올 중반에 양적완화를 종료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다수 신흥시장국에서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고 통화가치가 급락하는 등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특히 경상수지 적자를 지속하거나 보유 외환이 불충분한 브라질, 인도네시아, 인도,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5개국이 가장 불안했는데 이후 이들 5개국은 프레자일 파이브(fragile five, 5대 취약국)로 불리게 되었다. 이처럼 신흥시장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렸던 것은 양적완화로 신흥시장국에 대규모로 유입된 자금이 빠져 나가고 이로 인해 이들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다만 우리나라는 여타 신흥시장국과 달리 기초경제여건이 양호하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비교적 빨리 안정되었다.
실제로 지난해말 미 연준은 양적완화규모를 100억달러 축소하는 테이퍼링을 올 1월부터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이 때만 해도 시장에서는 '미국 경제가 회복하기 시작했다'는 긍정적 분위기가 지배했다. 그러나 올 1월말 불과 1개월 만에 100억달러를 추가로 축소하는 2차 테이퍼링이 발표되자 3, 4차도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는 전망이 득세하면서 신흥시장국을 중심으로 불안한 모습이 재현됐다. 특히 중국의 경제지표가 예상보다 저조한 것으로 나타나자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도 제기되면서 불안감은 증폭되었다.
우리나라 역시 이 같은 불안한 움직임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나 이내 안정되어 여타 신흥시장국과 차별화된 모습을 나타냈다. 이는 2년여에 걸친 경상수지 흑자, 3500억 달러에 달하는 역대 최고의 외환보유액, 2000년 이후 최저 수준인 27%의 단기외채 비중 등 우리의 건실한 경제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 이와 함께 미국의 테이퍼링 실시는 미국 경제가 회복된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만큼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게 우호적인 대외환경이 조성될 것이란 기대도 작용했다.
앞으로 미 연준은 테이퍼링을 계속 실시해 양적완화를 종료한 후 금리인상이라는 정상적인 통화정책으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정책전환은 과거 경험하지 못하였다는 자체만으로도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글로벌 위기가 재연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흥시장국 가운데 안전한 편이라고는 하나 미국의 정책전환 과정에서 국내 금리가 오르게 되면 10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의 규모뿐 아니라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긴요한 이유중 하나다. 아울러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의 통화정책이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급격한 자본유출이 발생할 가능성에도 유의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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