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수 건양대 총장 |
한 그룹은 대학에서 4년 동안의 학업을 마치고 사회로의 첫발을 내딛는 사람들로 '졸업생'이라 불리고, 다른 한 그룹은 4년 동안의 새로운 학업을 위해 대학의 문을 막 들어서는 사람들로 '신입생'이라 불린다.
이들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졸업(卒業)은 '학교나 학원의 학업 과정을 마침' 또는 '어떤 일이나 학문 따위에 통달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등으로 무엇을 '마친다' 거나 '끝낸다'는 의미가 강하다. 한편 입학(入學)은 '공부를 할 목적으로 학교에 들어감'으로 나타나 있다. 즉 무엇을 '시작한다' 혹은 새로 '들어간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방향으로 따져보면 정반대의 방향성을 갖는 집단들이 졸업생과 신입생이다.
큰 차별성을 갖는 집단으로 보인다.
그러나 약간 달리 생각해보면 졸업은 사회라는 또 하나의 출발선상에서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시작을 의미함을 바로 알 수 있다. 어떤 과정을 마쳐야 새로운 과정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졸업은 바로 시작, 즉 입학의 전단계가 되는 것이다.
결국 '시작'이라는 의미에서 볼 때 졸업과 입학은 같은 의미가 되는 것이다. 이는 영어단어에서 분명해진다.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졸업'이라는 단어의 영어 표현은 'graduation'인데, 미국에서 이보다 더 많이 쓰는 단어로 'commencement'라는 것이 있다. 이 단어의 뜻은 졸업과 시작이 함께 들어있는 것으로 미루어 서양사람들은 일찌감치 졸업과 시작이 하나의 의미였음을 간파했던 모양이다.
이와 비슷한 의미로 기하학적 대상으로 위상수학에서 나오는 '뫼비우스의 띠'라는 것이 있다.
즉, 바깥쪽과 안쪽으로 구분되는 하나의 면을 그 양쪽 끝을 엇갈려서 붙여놓으면 애당초 두 개의 면으로 구분되었던 것이 하나의 면으로 합쳐져 버리는 것이다. 이를 설명할 때 흔히, 개미를 등장시킨다. 만약 개미가 뫼비우스의 띠를 따라 표면을 이동한다면 경계를 넘지 않고도 원래 위치의 반대면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는 밖이고, 하나는 안이기 때문에 서로 정반대에 위치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던 것이 결국 같은 방향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이 바깥면과 안 면이 다르지 않고 같은 것이듯이, 졸업과 입학도 다르지 않고, 모두 새로운 시작의 의미로 봐야 한다.
졸업도 기나긴 학업의 길을 지나 인생이라는 새로운 출발점에의 시작이기 때문에 당연한 귀결이라 생각된다.
요즘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현업을 은퇴한 지 오래된 70~80대의 노년들이 새로운 배움의 길로 들어서는 경우를 왕왕 본다. 따지고 보면 배움만큼 시류변화를 타지 않는 장기적 안목에서의 건강한 투자는 없을 듯하다. 방송대학이나 사이버대학들에 다니는 노년학생들이 다양한 새로운 배움에서 즐거움을 찾는 이야기들을 보면 은근히 부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2월은 대학의 새내기로 시작하는 신입생이나 사회의 새내기로 시작하는 졸업생이나 그들의 부모, 또 그들을 맞고 떠나보내는 대학, 그들을 맞아들이는 사회, 모두에게 시작의 계절이 된다. 자연절기도 입춘을 지나 우수에 다다르고, 곧 경칩에서 춘분으로 힘찬 계절의 용틀임을 해나간다.
대학은 이 같은 시작을 준비하는 장(場)이기도 하다. 어떻게 좋은 시작을 해나가게 하고 그것을 잘 이끌도록 도와줄 것인가가 대학이 늘 고민하는 점이다.
이 맘때면 한비자 설림(說林)편에 나오는 '각삭지도(刻削之道) 비막여대(鼻莫如大) 목막여소(目莫如小)'라는 말이 떠오른다. 사람의 얼굴을 조각하는데 있어 처음에 코는 크게 다듬고 눈은 작게 다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코는 한번 작게 만들면 다시 크게 하기 어렵고, 눈은 크게 만들면 다시 줄이기 어렵기 때문에 매사에 그 시작이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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