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심 충남대 영문과 교수 |
우선, 우리는 영어교육을 위해 과중한 사교육비를 지출한다. 사교육이 비단 영어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 쏟아 붓는 사교육비의 많은 부분이 영어교육에 들어간다고 한다. 2012년 통계청의 사교육비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부모들이 자녀의 영어 등을 위한 사교육비로 쓴 돈이 연간 약 19조원에 달하는데 이는 초중고교학생 1인당 월평균 23만6000원을 지출하는 커다란 액수이며 가계에 큰 부담이 될 만한 액수이다. 이 가운데 평균 8만~10만원 정도가 학생 1인당 영어 사교육비로 지출된다.
한편, 국민의 혈세를 영어교육에 쏟아 붓기는 정부나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지난 이명박 대통령 정부에서 개발한 한국형 토플제도(NEAT)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교육부가 개발한 국가영어능력시험(NEAT) 고교생용 시험이 지난 2년간 네 번 치러진 후 폐지된다고 하니, 한국형 토플 개발에 들인 371억 원도 허공으로 날아간 셈이 되었다.
한국형 토플시험이 제대로 실시도 되지 못한 채 사장되는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영어권 국가에 유학을 갔다 오지 않아도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영어로 대화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이 제도 본연의 취지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특히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다름 아닌, 영어로 대화가 가능하도록…” 부분이다.
과연 우리 국민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영어로 대화할 일이 평생 몇 번이나 있겠는가? 또 직장생활에서 영어를 꼭 써야 할 일이 몇 번이나 있는가? 물론 먹고사는데 영어가 꼭 필요한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직 많은 우리 국민은 평생을 통해 영어로 대화할 상대를 거의 만나지 않는다. 이처럼 교실이나 강의실 밖에서는 영어를 쓸 상황이 거의 없는 나라를 EFL(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외국어로서의 영어) 상황이라고 한다. 같은 아시아 국가라 하더라도 홍콩이나 싱가폴, 인도네시아 등 같은 국가는 강의실 밖에서도 영어를 쓸 일이 많이 있으며, 거리에서 과일 파는 할머니들도 외국인들에게 영어로 물건을 판다. 이런 상황은 ESL(ESL, 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제2언어로서의 영어) 상황이다. 결국 우리 국민은 평생가야 영어를 쓸 일이 없는 나라인데, 영어로 대화가 가능하도록 영어공부를 시키려고 돈을 쏟아 붓는 것이다.
조금 더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 가 보면, 십수 년 전인 2000년경 각 지자체에서 '잉글리시 빌리지'같은 몰입식 집단 영어사용 구역을 만드는 것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요즈음 영어마을에 대한 열기는, 들인 돈에 비해서 그다지 큰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고, 막대한 적자와 운영상 문제로 그 열기가 점차 수그러들고 있다. 이 또한 영어로 대화할 상황을 억지로 만들어서 연습해보겠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말해서, 영어가 세계어(ELF, English as a Lingua Franca)의 위치를 유지한다는 전제하에, 우리나라가 인도나 싱가포르처럼 나름 '영어강국'이 되려면, 우리 사회가 계속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키워가며, 많은 지구인에게 살고 싶은 매력 있는 국가로 커나가면 된다. 그와 더불어 '우리 것'을 영어화(Englishize) 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서 세계화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 사회는 점차 다중언어-다중문화의 글로벌 사회로 변모해 갈 것이다. 평생 가야 영어로 대화할 상대가 없는 대다수 국민이 '영어로 대화가 가능하도록' 수 백억원의 혈세를 쏟아 붓고, 이젠 그 제도를 사장시키려는 사람들에게 영어교사를 장-단기로 영어권 국가에서 연수시키는 연구년을 증설할 것과, 현 정부 들어 각급 공교육 현장에서 감축일로에 있는 원어민 보조교사의 수를 늘리자고 건의하고 싶다. 보다 정확한 목표 설정과 교육철학이 전제되어야 올바른 교육 정책 설립과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고, 예산의 낭비나 수장이 바뀔 때마다 사장되는 교육제도가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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