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기억 따라' 성폭행 판결 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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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기억 따라' 성폭행 판결 달라져

법원 “어렴풋이 성관계 기억하면 무죄, 전혀 못하면 유죄”… 20대男 쇠고랑

  • 승인 2014-02-16 16:20
  • 신문게재 2014-02-17 5면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어렴풋이 기억나는 성관계는 무죄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성관계는 강간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8시간여동안 영화 보고 쇼핑하고 술과 밥까지 먹으며 데이트를 즐겼지만, 첫 성관계 후 2시간도 안 돼 가진 두 번째 성관계 때문에 남자대학생이 쇠고랑을 차게 됐다. 대전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이종림)는 강간치상과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준강간) 혐의로 기소된 A(25)씨 대해 징역 3년을 선고하고, 성폭력치료프로그램 80시간 이수를 명했다고 16일 밝혔다.

▲기억하고 있어 무죄=당초 검찰이 밝힌 A씨의 범죄사실은 이렇다.

A씨는 2013년 1월 고교 졸업을 앞둔 피해자(17·여)와 저녁식사를 하며 술을 마신 다음 제대로 걷지 못하는 피해자를 차량 안에서 강간해 처녀막 손상을 입게 했다. 강간 후에는 자신의 부모가 소유한 모 빌라로 데려가,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피해자를 한 차례 더 강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A씨 측의 주장은 다르다.

A씨는 2012년 12월 스페이스클럽에서 처음 만나 연락을 주고받다가 일주일여 후 만나 식사도 하고, 칵테일도 마시며 차량 안에서 키스도 나누는 서로 호감이 있는 사이라고 주장했다. 사건 당일인 1월 8일에도 오후 4시 정도에 만나 쇼핑을 하고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키스까지 했다. 저녁 9시쯤에는 소주를 나눠 마신 후 10시쯤 차량에서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A씨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차량 안에서의 강간상해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내렸다.

우선 CCTV 검증 결과, 피해자가 A씨의 허리를 안은 상태로 차량이 있는 곳까지 비교적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는 점을 들어 심신상실 내지 항거불능 상태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 피해자가 차량 내에서 성관계 당시 상황과 A씨의 구체적 행동에 대해 어느 정도 기억하고, 이전에도 스킨십이 있었던 점 등을 들어 A씨가 강간하려는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기억하지 못해 유죄=A씨 측은 빌라에서의 성관계도 무죄라고 항변했다.

차량에서 성관계 후 상황에 대한 A씨 측의 설명은 이렇다. 성관계 후 같이 있자는 합의 하에 차량을 17분간 운전해 빌라에 도착했고, 빈방에서 점퍼를 덮은 채 함께 누워 있다가 또 한 차례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는 당시 상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다음날 차량에서의 성관계 기억이 나는 것 같아 산부인과에 들렀다가 대전성폭력상담소를 방문해 상담한 후 어머니에게 사실을 털어놓았고, 결국 A씨는 고소당했다.

재판부는 짧은 시간 동안 충분히 피해자의 상태가 달라질 수 있음을 인정했다.

우선, 차량 안에서 성관계를 맺을 당시 상황은 어렴풋하게나마 기억해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에 이르지 않을 정도였지만, 이후 술기운이 오르고, 차량에서 잠든 후 빌라에서의 상황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심신상실 내지 항거불능 상태였을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술과 잠 등에 만취해 심리적, 물리적 반항이 현저히 곤란한 상태였다고 보이고, A씨도 피해자의 상태를 충분히 인식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유죄 이유를 설명했다.



윤희진 기자 wjde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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