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빈정거리는 투로 소 팔아 대학 보낸다면 쓰는 '우골탑(牛骨塔)'. 이 말에 민속학적 정의를 내리지 않은 채 대갈 선생이 세상 뜬 일이 오늘따라 아쉽기만 하다. 태고부터 소를 농경에 이용한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나 인도, 아니면 고기를 주로 쓰는 유럽이나 미국 어디에 이런 우골탑 고사가 있단 말인가.
지금이야 물론 '소 팔아 대학 간다'는 옛말이고 어감이 더 안 좋은 인골탑(人骨塔)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학자금 융자로 대학 다니고 졸업하면 취직 못해 신용불량자 세대가 되기도 한다. 의학전문대학원에 보내려면 4년 등록금은 1억원에 육박한다. 자기 자식이 최고라는 '내새끼즘' 하나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거액이다.
그러면 고려나 조선 때는 어땠을까. 늘 궁금했는데 가난한 선비의 편지를 읽게 됐다. 한성에서 태어나 충청도 남포현 심전면 삼례리(현재 보령시 미산면)에서 생을 마감한 조병덕의 사연이다. 그의 아들 조장희가 과거시험 치르는 데 30~40냥이 드는 비용을 대느라 논 팔고 소 파는 편지글에 구구절절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40년간 100배(1970년 서울대 인문사회계열 등록금은 3만2700원) 이상이나 뛴 등록금을 소값은 따라잡지 못했다. 교육비 과다 지출로 힘든 에듀푸어가 늘고 있다. 부인 딸려 자녀를 외국 유학 보낸 기러기아빠 중 언제든 비상할 능력을 갖춘 독수리아빠는 괜찮다. 비행기삯이 궁해 오도가도 못하는 펭귄아빠, 소형 오피스텔 세를 얻어 처자식만 강남으로 보내는 참새아빠의 사정도 짠하다. 도시서민에게는 이도저도 먼 나라 이야기다. 팔 땅뙈기도 소도 없다.
공부뿐이겠는가. 운동선수 뒷바라지도 여간 '대간하고' '개갈 안 나는' 일이 아니다. 스피드스케이팅 500m 금메달리스트 이상화도 부모님의 고생하는 모습에 스케이트 끈을 단단하게 조였다고 한다. 여자 500m 쇼트트랙에서 두 번 넘어지고 동메달을 차지한 박승희의 어머니가 들려준 '마이너스 통장' 사연도 눈물겹다. 쇼트트랙 박세영, 스피드스케이팅 박승주까지 3남매를 함께 길러낸 어머니는 집도 팔았고, 소가 있었으면 소도 팔았을 진정한 스케이트맘이다.
그런데 '소 팔아 뒷바라지'는 우리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스노보드 경기에서 우승한 미국의 케이틀린 패팅턴은 아버지가 시골 농장의 소를 팔아 뒷바라지를 했다 해서 잔잔한 감동을 낳고 있다. 국적을 떠나 모종의 동질감이 벼락같이 꽂히는 스토리다. 어려운 환경을 걸림돌 아닌 지렛돌로 삼은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자식 공부와 운동 수발에 뼛골 빠진 우리 부모님들 공을 탑 하나로 끝내기엔 부족하다. 또 1만년 전 신석기 시대 이래 한민족에 길들여져 봉사한 모든 우공들을 기려 탑을 세운다면 그 높이가 헤아려질까. 소들에게 왕생극락을 발원한 마음이 이제야 이해된다. 많은 상념에 젖게 하는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이다.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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