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안은 얼마 전 한국사의 사교육 유발 논란이 불거지자 ‘쉬운 출제’로 봉합했던 것을 연상시킨다. 쉽게 출제하고 출제 범위를 줄이면 사교육 부담이 줄고 공교육이 정상화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 같다. 하지만 왜 사교육에 의존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들어 있지 않다. 지역 간, 계층 간 교육격차 해소 대안으로도 뭔가 빠진 듯 보인다.
물론 수능이 어렵고 배워야 할 양이 많은 점이 사교육의 원인인 것은 분명하다. 수능에서 영어 듣기 비중 확대로 영어 사교육을 부추긴 예도 있다. 그렇다고 그 역의 관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쉬운 수능이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가 있다. 예측 가능한 평가가 그것이다.
만일 영어가 쉬어지면 그 반작용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 따라야 한다. 다른 다양한 전형 요소를 존치하는 한, 또 학생들이 진학을 희망하는 명문대 입시의 좁은 문이 존재하는 한 사교육은 성행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쉽게 출제해도 영어 외의 다른 ‘예비 수단’까지 계속 준비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시험의 생명은 수험생의 우열을 가리는 변별력에 있다. 신(神)의 영역이라고까지 불리는 적절한 난이도 조절은 그래서 중요하고 또 필요하다. 수능 영어에서 고난도 출제가 줄어든 만큼 수학의 변별력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잘못하면 전 과목으로 불똥이 튀어 사교육을 부추기는 역기능을 낳지 않으리란 보장 또한 없다.
다른 과목의 풍선효과를 못 막으면 결국 수험생에게 이로울 게 없는 제도가 되고 만다. 수능 부담을 경감하려면 공교육만 잘 따라도 좋은 성적이 나올 만한 교육의 질과 시스템이 구비돼야 한다. 이상적으로 들리겠지만, 자기주도 학습과 학생 선택권이 보장되고 다양성 및 수월성 교육이 이뤄져야 가능하다. 쉬운 출제를 해도 더 나은 점수를 위해 교육시장에 관심을 갖는 구조가 문제다. 왜 실효성을 역부족으로 보는지, 이 의문부터 풀어야 설익은 정책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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