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은 당초 단순 화재로 결론났었다.
2008년 3월 고씨의 부인 A(27)씨는 주방에서 (휴대용)가스레인지를 사용하던 도중 가스 폭발사고로 사망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를 토대로 단순 화재로 종결했었다.
하지만, A씨의 아버지가 딸 부부가 자녀도 없이 고액의 생명보험에 가입한 점을 들어 재조사를 요구하며 경찰에 진정서를 제출했고 경찰은 2년만에 재수사에 들어갔다. 재수사 과정에서 국과수에 재감식을 의뢰했고, 국과수는 가스버너의 밸브가 누군가에 의해 고의로 제거된 것으로 추정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를 근거로 경찰은 고씨를 살인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이례적으로 세 차례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모두 기각했다. 검찰은 2012년 7월 불구속 상태로 고씨를 기소하면서 공소내용을 이렇게 썼다.
고씨는 2008년 3월 집 주방에서 싱크대 상단서랍을 열고 가스레인지에 연결된 가스호스를 분리해 하단서랍에 놓아둔 후, 상단서랍과 하단서랍을 닫았다. 그런 후 도시가스배관의 중간밸브를 2분의 1쯤 열어 가스가 싱크대 하단서랍을 통해 새어 올라오게 하는 방법으로 가스를 유출시켰다. 가스레인지 옆에는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올려놓고 가스가 유출되는 것을 모르는 부인이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사용하는 도중 가스 폭발사고가 나게 해 부인을 살해했다는 것이다.
사건 발생에 앞선 2007년 5월과 12월 고씨는 부인이 재해로 사망 시 자신이 3억원과 7억원 등 모두 10억원을 받을 수 있는 보험에 가입했었다. 그러나 고씨는 범행을 전면 부인하며 3명의 변호사에게 맡겼다.
재판부는 고씨의 범죄 정황을 인정하면서도 무죄 판단을 내렸다.
우선, 화재 전 가스호스가 분리됐고 인위적 혹은 의도적으로 분리했다는 전문가들의 감정 결과는 받아들였지만, 중요한 증거인 가스누출 시간에 대한 2차례의 시뮬레이션이 실제 사고 현장과 동일하다고 보기도 어려워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게 이유다.
또 검찰 주장과 달리, 화재 발생 당시 욕실에서 반신욕을 하다가 갑자기 정전이 돼 나와 피신했다는 고씨의 주장도 인정했다. 실제 사고 현장 조사 당시, 욕실에 반신욕 준비도구가 있었고 화재 후 고씨가 현관 앞 엘리베이터에 주저앉아 있었다는 주민의 진술이 있지만, 화재 발생 후 고씨가 집에 들어가 욕실 내부를 조작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보험과 관련해서도, 갑상선암에 걸린 피해자의 어머니인 피고의 장모가 권유해 보험에 가입했다고 볼 수 있어 보험가입이 부자연스럽다고만 보기 어려운데다, 보험 전체 보상금 중 사망보상금은 6000만원이고 나머지는 모두 암 발생 보상금이라는 점을 들어 고씨가 보험금을 노리고 살해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이종림 재판장은 “고씨의 범죄 정황은 인정하지만, 여러 간접적인 증거를 감안하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범죄 증명이 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윤희진 기자 wjde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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