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부남 대전YWCA 성폭력상담소장 |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저런 사고를 가지고 계실까 하다가 이것이 여전히 성희롱·성추행, 더 나아가 성폭력의 문제로 이어지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소에서 만나는 피해자들은 여전히 피해자이면서도 당당히 피해자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런 사회적 시선 때문이다. 피해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묻는 어리석음을 우리는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2010년 여성가족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목력 범죄 신고율은 강간은 12.3%, 심각한 성폭행은 5.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보면 성폭력 신고율은 여전히 10%를 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성폭력 사건을 진행하다보면 피해자는 피해당시 옷을 어떻게 입었는지, 평소 품행이 단정한 사람이었는지, 사건당시 저항은 얼마나 했는지가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피해자가 힘겹게 고소를 결정해도 이후 이어지는 이런 '피해자 유발론' 시각은 피해자로 하여금 고소한 것을 후회하게 만들고, 절망하게 만든다.
상담소에서는 성폭력 재범방지를 위해 교도소 재소자와 보호관찰대상자를 상담하고 있는데 이들은 끊임없이 성폭력을 선택한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인정하기보다 피해자가 사건을 유발했고 자신은 거기에 넘어갔다는 주장을 계속하는 것을 본다. 이것을 용납하는 사회 분위기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건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피해자는 보호하고 이끌어줘야 할 13세 미만 아동이거나 장애인일 경우가 많다. 아니면 성인일 경우에도 위협과 위계로 인해 성폭력이 발생했었음을 알 수 있다. 성폭력은 자신보다 신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약자인 대상으로 발생하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폭력 예방교육은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기 이전에 아동과 청소년을 보호해야할 어른들에게 필요하다. 내 아이를 위해 타인을 위해 우리의 성에 대한 인식을 점검해 보자. 나는 어떤 성적인 말과 행동에 수치심을 느끼는가? 또, 다른 사람은 내가 한 성적인 말이나 행동에서 수치심을 느끼지는 않았는가? 무뎌진 우리의 감수성을 되찾아보자. 그동안 감정에 대해 터부시했던 문화 속에서 슬픔, 기쁨, 화, 짜증 이런 감정에 대해 소중히 여기고 적절하게 표출하도록 해보자. 가족과 동료가 이와 같은 감정을 느낄 때 공감해 주자. “화나는구나” “슬프구나” “짜증나겠다” “민망했겠네” “속상했겠다” 등등. 감정을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도 인간관계가 많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이 길러질 때 성폭력은 예방된다고 필자는 본다.
20년 전에 개봉되었던 '피고인'이라는 영화가 있다. 웨이트리스인 주인공 사라(조디 포스터)는 친구가 일하는 술집에 놀러갔다가 남자들에게 윤간을 당한다. 사건을 담당한 검사 캐서린(켈리 맥길리스)은 범인을 체포하지만 상대편 변호사와 타협하여 죄목을 정한다. 사회는 사라에게 강간을 유도했다는 책임을 묻는다. 이에 대해 사라는 무죄를 입증하기로 마음먹고 캐서린과 함께 타협없는 법정 투쟁을 벌인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여전히 유효한 사회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라의 눈으로 성폭력과 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져보자. '성폭력은 피해자인 여성이 철저하게 예방하거나 저항한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는 일이 아니다', '강간은 참기 어려운 성폭력의 표현이 아니라 계획적인 범죄행위이다', '성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당당한 일이다' 성에 대한 바른 인식은 나와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고 건강한 사회에서 살아가도록 돕는 지름길임을 알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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