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각 대전시건축사회 부회장, 건축사사무소 에이앤엘 대표 |
그들은 다름 아닌 저신용자들이었을 것이다.
은행거래도 별로 없을뿐더러 있더라도 예금보다는 대출이 많을 것이고 현금서비스를 많이 이용한 탓에 카드한도도 무척 낮은 이들로 개인정보의 유출로 인한 금융피해의 염려가 적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 본다.
그러고 보니 은행이나 신용카드사는 가진 자들에게만 더 많은 혜택을, 상대적으로 갖지 못한 자들에게는 강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지 않은가. 가진 자들은 신용등급 기준도 높은 곳을 차지하게 돼있고, 신용카드 한도도 더 많게 책정된다. 하지만 갖지 못한 자들은 담보나 적은 연소득 등으로 결국 신용등급은 계속 내려가고 고금리 대출로 생활하거나 빚을 갚을 수밖에 없어 신용등급을 회복하기가 더욱 어려운 것이다.
임금근로자보다 자영업자가 상대적으로 신용등급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데 자영업자는 투자비용이 많이 필요해 대출액이 많을 수밖에 없고 대출원리금 상황도 매출에 따라 불규칙해 신용등급을 올리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10여년 전에 병원설계로 인연을 맺은 병원장님이 계신다. 항상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진료로 병원운영도 안정적으로 하시던 그 분을 부러워하던 나에게 던진 말씀이 기억난다. 자신을 '자전거를 타는 사람'으로 비유하며 멈추는 순간 쓰러지면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에 힘들고 어려워도 페달을 멈출 수가 없는 자신도 많이 힘들다는 것이 요지다.
열심히 일하다가 한순간의 실수로 쓰러진 자들, 다시 일어나기 위해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한 자들과 그나마 스스로 자전거를 타고 있는 자들 중 누가 더 제도권의 도움이 절실하며 우선적으로 필요할 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일하지 않고 낮은 곳에 있는 자들, 권모술수로 재산을 탕감한 자들을 돕자는 얘기는 아니다.
하루 12시간을 일하고도 평균 임금보다도 적게 받는 근로자들, 공부할 시간을 떼어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학생들, 어린 자녀들을 뒤로한 채 식당과 건물청소로 나선 주부들, 불규칙한 작업수입으로 생활을 의존하는 예술가들, 신체적인 장애로 일반적인 업무수행이 힘든 장애우들, 정년퇴직으로 정규일자리에서 멀어진 어르신들, 이들은 바로 내 옆에 있는 이웃들이고 형제들이고 자녀들이며 부모들이다.
지난 해 대전건축문화제의 사회봉사프로그램을 맡아 노숙인을 위한 쉼터를 기획하면서 내 마음 안에도 노숙인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었음을 알게됐고 부끄러웠다.
알코올중독에 쓰레기통을 뒤지는 듯한 그들의 겉모습과는 달리 노숙 이전의 모습은 열심히 자신의 일에 매진했던 평범한 이웃의 모습이었다.
찬바람을 피해 역의 통로를 점령한 그들의 외롭고 쓸쓸한 모습 속에는 단란한 가정의 일원이었던 시절의 모습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노숙인은 수많은 삶의 이야기들을 간직한 채 현재는 방황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이웃들이며 이들에게는 최소한의 관심과 지원 그리고 희망을 갖게 하는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됐다.
원리와 원칙이 더욱 중요시되는 시대에 살면서 일정한 기준에 맞춘 신뢰와 신용을 지키지 못하면 바로 낙오자가 되는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사회는 점점 개인주의, 성과주의가 돼가고 있다.
담보나 연봉으로 책정되는 신용등급과는 별개로, 일에 대한 열정과 열심,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신용기준의 설정은 마냥 어려운 것이기만 할까.
사랑으로 채워진 경제정책과 사회기준이 있다면 좀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우리의 이웃이 많아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무지한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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