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
한 초등학교의 학생 4명은 잠겨 있던 교사의 사물함을 발로 차서 열고, 기말시험 문제를 휴대전화로 촬영해서 빼돌렸다. 고등학생들은 교실에서 집단적으로 반말과 막말을 하면서 여자 선생님을 조롱했다. 이런 모습이 촬영된 동영상은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공개됐다. 전국 4000등 안에 드는 우등생이었던 고3 학생은 자신의 어머니를 칼로 찔러 살해하고, 8개월 동안 시신을 안방에 방치한 채 생활했다. 그는 가끔 집으로 친구들을 불러 라면을 끓여 먹기도 했고, 수능시험에도 응시해서 대학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도대체 공부에 쏟는 시간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왜 이런 종류의 사건들이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빈도도 동시에 증가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우리의 공부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공부에 대해 우리가 가진 잘못된 믿음 중의 하나는 공부를 많이 하면 할수록 더 인격적인 사람이 되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믿음은 공부가 인간으로서 자신을 수련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던 시절에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과거 선비들의 공부는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와 행동거지에 대한 소양을 갖춘 사람을 만드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따라서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현명하고 인격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공부는 과거의 그것과는 다르다. 서양의 학문적 전통에 바탕을 둔 현재의 공부는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체계화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공부를 많이 했다는 것의 현재 의미는 자신의 분야의 전문지식을 체계적으로 습득했다는 것이지, 자기 수양을 위한 공부에 시간을 많이 투여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소양이 갖춰져 있지 못한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하고 정교화하는 기술만을 열심히 습득했을 때 발생할 수 있다. 자기 생각만 주장하는 것을 의사소통이라고 착각하고, 자신이 공들여 만든 주장에 설득당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심지어 적의를 품기도 한다. 기본적인 소양을 갖춘 인간을 만드는 공부가 배제된 상태에서,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고 정교화시키는 능력만 키워주는 공부는 인간이 아니라 자기합리화에 특화된 괴물들을 훈련시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지난 9일 한국교육개발원은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전국의 만 19세 이상 75세 미만의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것이다. 조사대상자들은 '우리나라의 초·중·고등학교를 전반적으로 평가한다면 어떤 성적을 주겠느냐'는 물음에 평균 2.49점(5점 만점)을 줬다.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50점도 안 되는 점수다. 특히,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교육문제로 '학생의 인성·도덕성 약화'(48.0%)를 가장 많이 꼽았다. 초·중·고 학생들의 인성·도덕성의 수준에 대해 응답자의 72.4%가 매우 낮거나 낮다고 평가했다. 그 결과, 학교에서 현재보다 중시해야 할 교육내용으로도 '인성교육'을 1순위로 꼽은 비율이 초·중·고 모두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우리의 교육에는 인성이 빠져 있고, 그것이 바로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미 많은 사람이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인성이 배제된 교육은 자신의 욕망과 이기심을 위한 행동을 쉽게 미화하고 합리화할 수 있는 능력만이 극대화된 차가운 괴물들을 양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의 교육에 '인성'의 따뜻함을 다시 불어넣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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