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익중 금융감독원 대전지원장 |
그러나 단점보다는 역시 오래 사는 게 부럽다는 생각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우리나라에 금융기관이 참 많다. 은행, 증권사, 보험사, 카드사, 저축은행, 신협 등 종류도 많고 숫자도 많다. 세계적으로 보면 훨씬 더 많다. 우리가 듣도 보도 못한 금융기관이 부지기수로 많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금융기관 중에 400년 이상 된 금융기관이 있을까? 답은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400년 이상 망하지 않고 살아 있을 금융기관이 있을까? 답은 '글쎄다'.
과거 우리나라에 대표적인 5대 시중은행으로 소위 '조상제한서'가 있었다. 1997년에 시작된 IMF 외환위기 이후 다 없어진 은행들인데 조흥은행, 상업은행, 제일은행, 한일은행, 서울신탁은행이 그들이다. 우리나라의 근대화와 함께 성장해온 대표적인 은행들이었다.
이들은 왜 없어졌을까? 답은 '할 일을 제대로 안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할 일이란 무엇이었을까? 간단하다. 돈을 갚을 능력이 있는 회사나 개인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 그들의 할 일이었다. 좀 전문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자산건전성을 확보하는 일 말이다.
그렇다면 그 은행들은 왜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회사나 개인에게 돈을 빌려 주었을까?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여신관행의 문제 등)가 있지만 여기서 그 이유까지 언급하는 것은 너무 깊게 들어가는 것 같아서 생략하겠다.
아무튼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금융감독당국의 주도로 여신관행을 혁신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 경제는 이내 회복되었고 은행산업도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외환위기를 극복한 학습효과 덕분에 2008년에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때 우리나라 경제와 금융산업은 비교적 타격이 적었다. 물론 아직까지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인해 우리나라도 저성장을 겪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금융산업을 대하는 시각이 달라졌다. 소위 '월가 시위'에서부터 촉발된 금융소비자 보호강화 움직임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금융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라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금융소비자 보호 없이는 전체적인 금융시장의 안정과 선진화를 이룰 수 없다는 큰 흐름속에서 금융 패러다임이 금융기관인 공급자 중심에서 금융소비자인 수요자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금융소비자의 권익보호 강화를 위하여 금융소비자 보호 조직과 인력을 지속적으로 확충해 오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2012년중 접수된 금융민원은 총 9만5000건으로 전년 대비 12% 수준 증가했으며 특히 금융감독원 대전지원에서는 관할지역인 대전·충청지역의 금융민원을 2416건 처리했는데 이는 전년보다 43%나 증가한 수치다. 이러한 민원증가추세는 2013년에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동양의 회사채나 CP 투자자들에 대한 불완전판매 문제, 3개 신용카드사의 고객정보 대량 유출 문제 등에서 보듯이 소비자 보호문제를 소홀히 하는 금융회사는 자칫 파산에 이를 정도로 심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금융기관이 금융기관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고객의 신뢰 덕분이고 신뢰를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금융기관들은 소비자의 입장에 서서 스스로 소비자의 권익보호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금융거래약관이나 고객과의 업무 프로세스 등을 꼼꼼히 살펴보고 더 이상 정보의 비대칭 문제로 소비자가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이를 개선하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는 금융기관이 고객과의 거래관계에 있어 수익성만 앞세우지 말고 소비자 권익보호를 더욱 중시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의 모든 금융기관들이 '별에서 온 그대'처럼 400년 아니 그 이상 영원히 사랑받으며 살아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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