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충 충남도립청양대학 총장 |
역사적으로 보면 고조선에는 8조의 법금이 있어 나라를 다스렸다고 하고 세계최초의 성문법으로 알려진 BC 1700년경의 함무라비 법전도 282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복잡해지다 보니 법률이 많아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법률이 제정되면 국민 생활에 도움이 되고 국가발전에도 기여하게 된다. 국회의원을 평가하는 데에도 법률안 제안건수가 주요변수가 된다.
법률 하나하나에는 국민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국민에게 혜택을 주기도 하고 부담을 지우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특정계층을 위한 소급효과도 인정해 준다. 특별법이기 때문에 법의 일반원칙과 상충될 수도 있다. 법률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서 정부조직관련 조항이나 예산 관련 조항이 들어가기도 한다. 물론 필요한 조항이기도 하지만 특정계층에만 혜택을 줌으로써 힘없는 사람만 손해라는 사회적 인식을 확산시키며 많은 국민에게 새로운 욕구를 촉발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법률은 뒤집어서 보면 규제가 된다. 법률이 많다 보니 일을 하자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하고 교통영향평가도 받아야 하고, 부패영향평가도 받아야 하고 규제영향평가도 받아야 한다. 여기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 공청회도 열어야 하고 설명회도 개최해야 하고 사전예고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러한 절차에 해박한 사람도 별로 없다. 일을 추진하다가 도저히 안 되면 포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시간은 시간대로 걸리고 비용은 비용대로 드는 고비용구조이다. 행정이 비효율적이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법률로 규정하면 일의 탄력성을 잃게 된다. '민간기업의 변화속도가 100이라면 법의 변화속도는 1'이라고 한다. 상황 변화에 대처능력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상황이 변화되었는데도 지켜야만 하며 바꾸려면 엄청난 저항이 따른다. 정부에서는 창조를 외치는데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법령에 근거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적용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고치려면 행정적 절차와 사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아무리 빨라야 1년은 걸린다. 비용이 드는 것은 민원인의 몫이다.
요즘 공공기관 개혁이 화두다. 잘못되면 기관장을 문책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기관장에게 무슨 권한이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업무는 기관의 설립근거에 명시되어 있으며 인사는 각종 규정에 의해서 재량권은 거의 없고 중요한 사항은 노사협약에 명시되어 있다. 예산편성은 부처의 눈치만 보거나 공공재의 가격에 의존하며 가격은 사실상 정부가 결정한다. 예산집행은 각종 예산 규정에 의해서 개입할 여지가 없으며, 예산항목 하나 바꿀 수 없다. 사실상 직원들의 상여금 지급률을 결정하는 기관평가는 정부에서 이루어진다. 업무처리의 적정성에 대해서 해당부처나 감사원의 감사 그리고 국정감사를 받는다. 기관장이 할 수 있는 관련기관에 가서 업무계획을 설명하거나 몇 사람 전보시키는데 역할뿐이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면 임기가 거의 다 되는 구조다.
아무리 법률 만능시대라고 하지만 실제로 법률로 제정하는 것이 필요한지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일몰제 등을 도입해 법령의 탄력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행정으로 할 수 있는 분야가 얼마든지 있다. 정부정책의 일관성 유지가 생명이지만 그때그때의 여건에 맞게 처리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미국에서도 정부개혁에 임하면서 각종 규정을 폐기한 적도 있다.
법률에 규정이 없으면 하면 된다. 그것이 서구의 법률개념이다. 우리는 법률에 규정이 있어야만 할 수 있다. 세상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나온 지 3년밖에 안 됐는데 5세대 진화를 하고 있다. 법률로 규정하기에는 불가능하다. 창조의 시대는 법률로 규정할 수 없다. 하다가 실수 할 수 있다. 실수하면 온갖 책임이 따른다. 이래서는 창조경제가 불가능하다. 패스트 활로어를 넘어선 지금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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