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에도 혹시 지역정서?' 이번 설 선물세트 매출 분석을 보고 잠시 해봤을 법한 생각이다. 충청과 영·호남은 건강식품, 수도권은 한우가 대세였다는 롯데마트의 분석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 구성비(충남 16%, 전남 21.4%, 서울 10.9%)와 관련 있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명절 선물은 이밖에 시대상과 경제적 수준, 소비 의식을 반영한다.
지형, 기후, 특산물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 설 음식을 봐도 이게 확연하다. 그 예로 쌀이 귀한 제주도는 전라도보다 떡 종류가 적다. 제사떡, 설기떡으로 남북이 구획된 경상도보다 충청도 떡 문화는 간단하다. 경기도는 양반 떡, 상민 떡 흔적이 남아 있다. 수도권 떡국은 밋밋한 편이지만 비교적 약한 지역성과 대비시킬 만한 정치 성향은 아니다.
더 거친 분류법으로는 음식에 좌·우익이 있다. 일본 작가 하야미즈 겐로에 따르면 필자는 '좌익'이다. 해명부터 하자면 지역 음식과 건강을 우선하는 '음식 좌익', 양적이고 글로벌한 음식을 즐기는 '음식 우익'의 양분법으로 그렇다. 햄버거는 음식 좌익이고 떡국은 음식 우익이다. 좌익이면서 충청도 다슬기떡국, 경상도 굴떡국, 전라도 닭장떡국은 약간씩 계열을 달리한다. 이 역시 정치적인 해석은 아니다.
그렇다고 음식문화가 지역주의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남에서 올리브유를, 북에서는 버터와 생크림을 즐겨 쓰는 이탈리아는 실제로 남북 지역주의가 심하다. 미국에서는 양배추 좋아하는 독일인을 크라우트(Kraut, 양배추), 콩 잘 먹는 멕시코인을 빈(Bean, 콩)으로 조롱한다. 그렇지만 '홍어', '과메기' 등 특정지역 비하가 심해 혐오죄 신설안이 국회에 발의된 우리만큼 심하지는 않다.
다행히 우리는 음식이 정치 신념의 도구로 쓰이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에서 적(敵)으로 인식하고 잘 먹지 않던 '피자', 노동운동가 세자르 차베스가 농장주에 대항해 포도 소비를 보이콧할 때의 '포도'처럼 정치적 기호로 삼는 음식이 없다. 부호가 먹는 캐비어(철갑상어의 알)와 지금 조청에 찍어 먹는 떡에서 미세한 사회·심리적 의미를 찾을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다시 차례상을 더듬어보자. 경기도는 찢지 않은 통북어를 쓰고, 경북 쪽은 상어고기(돔배기)를, 경남 쪽은 어물을 쓴다. 같은 충청권도 경북 가까운 지역은 대구포, 오징어포, 상어포를 올리고 호남에 인접한 지역은 병어, 가자미, 낙지, 홍어를 올리기도 한다. 충청 내륙은 배추전, 무적 등 전과 부침류가 흔하다. 제주도에서는 상어적과 옥돔적이 오른다. 강원도에선 감자와 고구마가 차례상 재료로 활용된다. 모두 크게 보면 환경과 재료의 차이에 기인한다.
여기에 식습관이나 요리법에 따른 어떤 차등이나 서열화는 무의미하다. 그런 면에서는, 요즘 막되게 가는 일본이지만 배울 점이 있다. 다름 아닌 음식의 지역 차이를 존중하면서 음식으로 지역문화와 지역경제를 일으키고 음식으로 하나 되는 모습이다. 고장 음식의 자부심에서 나온 프랑스의 '음식 지역주의'도 부러움의 대상이다. 음식에까지 고정관념이라는 양념을 칠 이유는 없다. 음식은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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