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식]'대전동(大傳棟)'에서 바라본 맹모삼천

  • 오피니언
  • 데스크시각

[최충식]'대전동(大傳棟)'에서 바라본 맹모삼천

[중도시평]최충식 논설실장

  • 승인 2014-01-28 15:38
  • 신문게재 2014-01-29 16면
  • 최충식 논설실장최충식 논설실장
▲ 최충식 논설실장
▲ 최충식 논설실장
강릉에 가면 대전동(大田洞)과 한밭마을이 있다. 새 주소체계로 대전동 일부가 '과학단지로'인 점도 별난 우연이다. 이 이야기는 접고, 지금 쓰려는 대전동은 뉴욕 맨해튼의 집값에 버금가는 강남의 '대치동 전세 사는 사람들의 동(棟)'이다. 사회조사에서 강남구에 사는 첫째 이유가 자녀교육이라는 단수응답만 16.7%였다. 주로 그쪽 동네를 가상한 '대전동'이라 보면 된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가 아니더라도 교육환경과 주거는 불가분리의 연관이 있다. 노은지구나 어느 한 블록에서 33.3%를 나타낸 도안지구의 가파른 취학률도 그 작은 방증이다. 많은 여성들, 열녀(烈女 아닌 列女) 고사에서 튀어나온 맹자 엄마의 비범한 교육방식이 조작으로 의심받는 처지이지만, 과거시험 기반의 관료제 국가를 지탱했고 여전히 살아 펄떡이며 교육열의 뒤를 받쳐준다. 공직 후보자의 위장전입을 덮는 구실 역시 맹모삼천의 허울이었다.

지방 '엄마'들에게도 강남의 사례, 특히 서울 출신 서울대 신입생 70% 중 8학군이 40%라든지 서울대 정시모집에서 서울지역 합격자 187명 중 90명이 강남구 출신이란 대목은 맹모삼천의 모델케이스로 덧칠된다. 도안신도시 조성이 언제 정상궤도에 오를지 둔산 학군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고민하는 배경에는 강남 학습효과가 얼마간 있다. 우리만 그런 건 아니다. 맹자의 나라도 명문 베이징대, 칭화대, 인민대가 모인 하이뎬(海淀)구는 집값이 지금 천정부지로 뛴다. 교육선진국 미국에 가도 진학시즌이면 직장까지 팽개친 '차량 맘(SUV mom)' 행렬이 어렵잖게 눈에 띈다.

어딜 가나 교육 인프라를 누리며 자식 공부 시키려는 것이 엄마 마음이다. 그 마음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이사를 해도 고려 사항은 교육의 충실성, 사교육의 유리성, 상급학교 진학 기회다. 바로 여기에 숨은 핫이슈가 공교육 정상화, 지방교육재정 확충, 학력 불균형 등이다. 동일한 골인 지점으로 그저 뛸 뿐, 지식과 함께 규범과 가치를 넉넉하게 전수할 만큼 시스템이 고효율적이지도 않다.

맹모께 배울 게 그래도 남았다면 똑바른 자식양육법이어야 한다. 한도를 벗어난 과열은 문제적 잔재를 남긴다. 실패한 대학 입학사정관제 역시 엄마의 경제력, 정보력이라는 '엄마사정관제'에 휘둘린 경우다. 맹모삼천이 『열녀전』 저자의 순수 창작물인지를 떠나 동아시아 2000년 역사를 넘어 아직 엄마들 마음을 관통하는 바이블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인적·물적 자원의 독식으로 학생 개개인의 기회와 학습권을 침범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지역 교육수장인 교육감의 어깨는 그래서 무겁다. “박수칠 때” 떠난다는 김신호 대전교육감, 별세한 신정균 초대 세종교육감, 강복환·오제직 두 전직의 불명예를 계승한 김종성 충남교육감, 충북지사 출마설이 회자되는 이기용 충북교육감의 뒤를 이을 차기 교육감의 책무성을 우선 교육격차 해소에서 찾길 바라는 이유다. 9년간 16만명을 줄이는 대학 구조개혁 추진 계획이 28일 발표됐는데, 정말 더 필요한 것은 유치원부터 시작해 교육 전반의 구조 개혁인지 모른다.

예컨대 그 개혁의 하나는 불리한 학생, 낙후된 학교를 지원해 오히려 '후진성의 이점'으로 살려내는 일이다. 교육환경이 뛰어난 지역에 삼천(三遷)하는 대신에 공정한 경쟁의 룰을 제공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디더라도 그런 방향으로 가는 중요한 미션이 교육격차 줄이기다. 전국 시·도 간은 물론 대전 동서 간, 세종시 원주민과 이주민 간, 충남과 충북의 지역 간 차이 극복에 역차별 같아 보이는 정책을 펴야 할 때도 있다. '대전동' 입주가 맹모삼천이라는 맹신의 씨앗을 뿌린 격차는 교육 수요자 사이드에서 보면 기회균등에 대한 차별이다. 차별이 사라져야 맹모삼천은 타당성을 갖는다.

이렇게도 생각해본다. 맹자 정도의 위인을 키운 엄마라면 세상을 품을 호연지기를 가르치려 세 번 이사했다. 서당 부근을 택하기 전, 묘지에서 인생을, 시장에서 경제 원리를 배우게 했다. 가정하자면 두 번 이사하는 맹모이천(孟母二遷)에서 스톱했다면 시장 상인 흉내를 내다 아마 큰 사업가가 됐을 것이다. 교육에는 딱히 '이거다, 저거다' 단정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지만 변할 수 있는 걸 변화시킬 용기는 지방선거에 출마할 교육감 후보가 갖춰야 할 기본 덕목이다. 정의론에서 존 롤즈가 말한 '자연의 복권 추첨(natural lottery)'에 지배당해서는, 달리 말해 교육 적합성과 학생의 장래가 부모 능력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겠다는 결론이다. 대전동(大傳棟)은 없는 게 낫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5.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1. 더젠병원, 한빛고 야구부에 100만 원 장학금 전달
  2. 한화이글스, 라이언 와이스 재계약 체결
  3.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4. [현장취재]한남대 재경동문회 송년의밤
  5. 대전시주민자치회와 제천시 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 자매결연 업무협약식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