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 발생한지 16년째 접어들었음에도, 신병조차 확보하지 않은 채 공소시효를 감안해 기소부터 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법원은 사건 담당 재판부만 결정한 채 6개월이 지나도록 첫 재판도 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사건이다.
1998년 8월 12일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3시 사이에 대전의 한 주택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발생 시간 사이 피해자 이모(당시 38)씨가 자신의 집 안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부검 결과, 이씨는 전신을 둔기로 맞아 뇌경막출혈 등으로 사망했다.
수사를 맡았던 경찰은 김모(53)씨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김씨는 당시 같은 집에 세들어 살던 이씨가 평소 밤늦은 시각에 술에 취해 음악을 크게 트는 등 소란을 피우는 것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김씨가 이씨와 말다툼을 하다가 순간적으로 저지른 범행으로 보고 김씨의 행방을 추적했지만, 이미 달아난 상태였다.
경찰은 김씨의 신병 확보를 위해 휴대전화를 비롯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행적을 쫓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김씨의 형제를 통해 유전자를 확보한 후 신원불명의 상태로 숨진 전국의 무연고 사망자들의 유전자와 꼼꼼히 대조했지만, 허탕만 쳤다.
그러다가, 어느덧 공소시효 만료인 2013년 8월이 다가왔다. 지금은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25년으로 늘었지만, 당시만해도 15년이었다. 다시 말해, 지난해 8월 12일까지 김씨를 잡지 못하면 사건은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결국 검찰이 나섰다.
검찰은 공소시효 만료 3일전에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김씨를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이에 따라 김씨에 대한 공소시효는 형사소송법(제249조)에 따라 2038년까지 연장됐다.
사건을 넘겨받은 대전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이종림)는 김씨의 주소지로 두 차례에 걸쳐 관련 서류와 국민참여재판 의사 확인서, 국선변호인 선정 고지서 등을 발송했다. 하지만, 모두 수취인 불명으로 반송됐다.
외국으로 밀항했는지, 신분을 세탁해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 등 김씨의 소재는 물론, 생사 여부조차 알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대전지검 관계자는 “용의자가 확실한 만큼, 공소시효 만료가 임박해 불가피하게 신병 확보 없이 기소한 것”이라며 “지명수배와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태로, 신병이 확보되는대로 법에 따라 처벌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희진 기자 heej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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