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창곤 대전프랑스문화원장 |
이런 대화의 와중에 내가 항상 놀라는 것은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의 탁월한 선거판 분석능력이다. 각 잠정후보군의 정치적 성향과 지지 배경은 물론이고 보통사람으로는 예측하기 힘들 듯한 다자 경선구도에서의 경우의 수를 줄줄이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그들의 모습은, 어쩌면 보수, 진보의 전통적 분할구조에다 지방색이라는 우리의 특수한, 그렇지만 지금까지는 절대적이었던 선거함수가 형성케 한 근대 한국인의 독특한 정치유전자 덕택인지도 모른다. 혹자의 말대로 작은 국토에 동질적인 인구가 특정이슈에 몰입하고 거의 모든 쟁점을 정치화하는 우리의 특성도 이런 현상에 일조할 것이다. 구사하는 몇몇 용어가 다를 진 몰라도 중앙시장 채소좌판 아줌마의 퉁명스런 예측이나 정치학과 교수들의 장황한 진단이 그리 다르지 않다고 느끼는 것도 우리사회의 선거문화에 너무나 비합리적 요소들이 전면을 장악해 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우리 근대사의 급박한 정치변화와 더불어 그 쓴맛 단맛을 모두 맛본 우리 국민 모두가 정치의 달인이 된 셈이다.
그러나 대단히 이상한 점은 이러한 합리적 판단으로 이루어진 듯한 달인의 경지가 부유하는 “말”의 세계에서 딱 그치는 데 있다. 선거 때마다 분다는 “바람”이나 영, 호남(충청도 예외는 아니다)지역민의 각 지지정당에 대한 맹목적인 몰표 현상들은 술 한 잔과 더불어 기염을 토해내던 정치달인들이 취할 합리적 의사결정의 결과는 아닐 것 같기 때문이다. 기호 1번을 얻기 위해 사활을 건 투쟁을 벌이는 후보자들의 양태는 어쩌면 선거 전에 우리들이 장황하게 펼치는 모든 시나리오들이 전혀 작동하지 않음을 일찍부터 간파한 “꾼”들의 시니컬한 민낯의 모습인 셈이다. 역대 선거의 결과들이 이러한 잘못된 선택을 보여줬다면 이러한 “오해”에서 선출된 선량들이 합리적인 정치를 펼칠 거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접어야 할 테고, 그 피해는 오로지 유권자인 우리의 몫인 것이다.
민주국가에서 투표는 각 개인이 모든 정치, 사회적 공론을 구체화하는 유일한, 최상위의 제스처다. 이러한 중차대한 행위가 앞서 말한 합리적인 정치달인들의 성찰에 입각한 신중한 결정이어야 함은 더 말할 나위없다. 이제는 기호가 1번이니까? (능력이 아니라 분류기호가 1번일 뿐이다), 동향, 동학이니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런 맹목적인 배려는 대부분 일방통행이기가 쉽다), 집권당이니까? (대부분 집권 1년차부터 바람 빠지기 십상이다), 야당이니까? (집권당 발목잡기는 국민보다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앞세운 결과이기가 쉽다) 무작정 표를 던지는 정치적 관성을 버려야 한다. 각 개인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역시 양질의 정보일 것이다. 유사이래, 가장 광범위한 정보의 홍수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제 정보의 빈약을 자신들의 불합리한 선택의 이유로 내세우는 것은 빈약해 보일 뿐이다. 거꾸로 일부 전통언론의 이념적 성향을 대변하는 편향적 정보나 인터넷상의 황당무계한 괴담들의 난무도 역시 그 이유는 될 수 없다. 어떤 특정한 정보나 이슈에 공감하는 것은 결국 최종 수용자인 우리 개개인의 몫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해서 사회흐름 전반에 대한 거시적 정보와 자신의 삶에서 일상적으로 감지하는 조그만 변화들의 취합, 거기에다가 그것들에 기초한 우리사회의 건설적 지향점들을 제시하는 후보에게, 비록 그 또는 그녀가 기호 13번이라도, 비록 동향, 동문이 아니라도, 여성이라도, 생판 모르는 정치초년병이라도 흔들림 없이 투표할 때만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투표 후 다음 투표까지 정치권에 퍼붓는 비난으로 소진하는 우리 국력의 상당부분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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