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원 유성 한가족 요양병원 이사장 |
하나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복도에서 교장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당연히 정중히 인사를 드렸는데 교장선생님은 쳐다보지도 않고 얼굴을 굳힌 채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 만일 독자께서 그 선생이라면 어떤 생각과 감정이 들었을까요? 어떤 분은 우선 '교장이면 다야, 지가 뭔데 인사도 안 받아?'라는 생각이 들게 되면 화가 나게 될 것입니다. 어떤 분은 불안한 감정이 생긴다고 합니다. '내가 교장에게 뭘 잘못했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결과입니다. 어떤 분은 우울해진다고 대답을 하십니다. '그래 내가 얼마나 별 볼일이 없으면 인사도 안 받겠어?'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면 그러한 감정이 생기겠죠. 독자 분들은 어느 쪽이신가요. 화가 날까요? 우울해질까요? 아니면 불안일까요? 이 한 예를 봐도 사람이 각각의 상황에 다르게 반응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반전은 여기서 일어납니다. 교무실을 들어갔는데 한 선생님이 “교장선생님 지금 못 봤어? 사모님이 교통사고가 나셨는데 아들이 중태래! 큰일이 났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어떤 생각과 감정이 들까요. 아직도 화가 나거나 불안 혹은 우울한 감정이 남아 있을까요? 아마도 그런 감정보다는 안타까운 감정과 어떻게 도와드려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바뀌어 버릴 겁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복도에서 인사도 안 받고 그냥 가버린 그 사건이 바뀌었나요? 아닙니다. 그 사건은 바뀔 수가 없습니다. 단지 그 사건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이 바뀌었을 뿐입니다. 이 예는 그러한 인지적 오류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예지만 실상에서 이렇게 극명하게 인지적 오류가 드러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때문에 마음이 많이 힘들어하시는 분들을 진료실에서 너무 많이 봅니다. 우울 장애는 흔히 자신의 가치를 저평가하는 상황에서 사건을 해석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무가치하게 평가하거나 자학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살사고가 극명한 예겠죠. 불안장애는 '절대 이렇게 해야만 해/하지 말아야만 해'(Must Be/Must Not Be)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사는 경우가 많이 있게 됩니다. '나는 절대 아프지 말아야만 해', '이거 이렇다가 심장마비로 죽는 것 아니야'라는 생각이 저변에 깔렸으면 공황장애나 불안장애가 되고 '나는 절대 남에게 실수하면 안 돼'라는 생각은 사회 불안증을 만듭니다. 무대에서 연주할 때 초보자가 '나는 절대로 실수하면 안 돼'라는 생각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불안이 가중되고 더 실수를 많이 하는 것을 여러분도 경험하셨을 겁니다.
진료 중에 안타까운 것 하나는 많은 분이 이러한 생각의 함정 속에서 힘들어 하시는 것입니다. “선생님 이번 시험을 망쳤어요”하면서 울고 들어온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알아보니 겨우 한 문제 틀렸고 98점을 맞은 학생이었습니다.
이 학생은 '절대 내가 아는 모든 문제는 맞혀야만 해'라고 생각하는 강박증이 있는 모범생 환자였습니다. '흑백논리'라고 전체(아주 우수한 점수)를 못보고 일부 자신의 실수(한 문제 틀린 것)만을 보고 힘들어하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은 어떨까요? '나는 절대 남에게 무시당하지 말아야만 해', '내 자식은 일류 대학을 들여보내야만해' 이런 강박증(Must Be)에 시달리고 있진 않으신가요?
이것보다는 '무시당할 수도 있지 뭐가 어때', '성공을 못 할 수도 있지, 열심히 하는 과정도 중요하잖아?', '단지 내 자식이 일류 대학보다는 행복할 수 있는 과 선택이 더 중요하지' 라고 생각을 바꾸실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분이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불행하십니다. 'Must Be'를 'May Be'로 'Must Not Be'를 'May Not Be'로 바꾸는 노력을 하실 수만 있다면 더 많은 사람이 행복 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불교적으로 '마음을 비워라'와 기독교적으로 '범사에 감사해라'는 아마도 이런 생각이 축약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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