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정 ITER한국사업단장 |
아이들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오케스트라가 선택됐던 것은 개성 있는 각각의 악기들이 한데 모여 서로 조율하는 과정을 통해 아름다운 하모니가 완성되기 때문일 것이다. 목관 악기, 금관 악기, 타악기, 현악기가 어우러지는 오케스트라는 적게는 20명 많게는 100여명이 동시에 연주하는 형태로 그 자체가 커다란 악기이다. 다른 솔로 연주와는 달리 어느 한 파트라도 튀거나 뒤처져서는 풍성한 소리를 낼 수 없다.
'화합과 조화'라는 오케스트라의 미학은 다양한 것들을 모아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가는 것일 것이다.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지만,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이런 오케스트라의 미학을 필요로 하는 사례를 찾아 볼 수 있다.
바로 에너지 부족과 지구 온난화라는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 노력이다. 국가별 경쟁력 강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과학기술이지만, 한 나라가 처한 문제가 아닌 인류 공동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저마다 뛰어난 분야와 기술을 가진 국가들이 하나로 힘을 모아 최상의 오케스트라를 꾸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움직임이 미래 친환경에너지로 기대되고 있는 대용량 핵융합에너지 개발을 위해 세계가 힘을 모은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공동개발사업이다.
핵융합에너지는 화석에너지원으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와 세계 에너지 자원 확보에 대한 분쟁과 갈등이 더욱 심해지는 상황에서 최적의 미래 에너지원로 주목 받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유럽,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인도 등 세계 선진 7개국이 힘을 모아 핵융합에너지 상용화 가능성을 최종 검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과학기술 협력 연구 사업인 ITER 공동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ITER 공동개발사업에 참여한 국가들은 핵융합로 건설을 위해 각자 쌓아 온 핵융합 기술력을 토대로 ITER의 각 부분별 품목들을 개발해 조달하게 된다. 결국 ITER는 각국이 보유하고 있는 다양한 핵융합 연구결과와 기술력을 한데 모아 협력과 조화를 통해 만들어 내는 하나의 오케스트라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국내기술로 개발한 초전도핵융합장치인 KSTAR의 개발 과정을 통해 얻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ITER건설을 위해 진공용기본체, 전원공급장치, 진단장치 등 10여개 품목을 순수자체 기술로 제작, 납품한다. 뿐만 아니라 매년 진행되는 KSTAR 실험을 통해 ITER 건설 및 운영에 필요한 기술 자료를 상호 보완적으로 제공하기도 한다. 그 동안 KSTAR 개발과 운영 실험을 통해 닦아 온 연주 실력을 바탕으로 ITER라는 오케스트라에서 세계 과학기술 무대 위에 올라 선진국들과 함께 연주를 완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대 과학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규모와 다양성이 커지면서 연구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국제교류와 협력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과학기술 개발을 위한 정보교환을 넘어서 여러 나라들이 인력과 비용을 함께 부담하고, 기술들을 한데 모아 공동으로 연구를 추진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ITER와 같은 국제협력 프로젝트는 21세기 과학기술 협력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과학기술이라는 오케스트라 무대에서 선진국들과 완벽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우리나라도 쉬지 않고 실력을 닦는 것이 필요하다. 더불어 이를 위한 정부의 뒷받침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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