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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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한 청춘 아버지를 닮다
충남 공주의 한 시골마을 2남 4녀의 막내로 태어난 전문수 회장. 어릴 적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이었다.아버지가 운수업 서비스공장을 하셨다. 60년대에 옛 충남도청 주변에 공장이 있었다. 아버지는 선구자적인 분이셨다. 자동차가 많지 않던 시절 지금의 공업사와 비슷한 개념이다. 하지만 너무 일찍 혁신에 눈을 뜨셨는지 아버지 사업은 잘 안됐다. 아버지 사업 실패 후 고등학교시절부터 전 회장은 대전에서 자취, 하숙생활을 전전했다. 부모님은 또 다른 삶을 위해 울산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중학교 때까지 공부를 곧잘 하던 소년은 대전상고에 입학했다. 당시만 해도 대전상고는 전국에서 알아주던 학교다. 금융권에는 대전상고 출신이 자리를 안 잡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전 회장은 당당하게 말했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었죠.” 아마도 학창시절 부모님 그늘에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공부는 안했지만 학창시절은 즐거웠다.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즐거운 10대를 보냈다. 하지만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사업가 기질을 타고났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찍이 사업전선에 뛰어들었다.
#20대 젊은시절 자본주의에 눈을 뜨다
전 회장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른생활 사나이가 됐다. 일찍 사회에 뛰어들었다. 21살부터 자기사업을 시작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중요성을 일찍 깨달은 것이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신념이 강했다. 졸업 후 부모님이 계신 울산으로 갔다. 해양대를 가고 싶었지만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포기했다. 자신에게는 돈을 버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도 대전상고 동기 중에는 사업을 가장 빨리 시작했던 것 같아요. 손을 안 대본 사업이 없을 정도니까요”라고 말하는 전 회장은 직업으로만 경험한 게 20여가지 넘는다고 회상했다.
울산에서 요식업을 운영하며 장사만 하면 돈을 벌 줄 알았다. 하지만 돈은 버는데 관리가 안 되니 돈은 단순한 휴짓조각이 돼버린다는 사실을 이른 나이에 깨달았다. 사회생활을 경험으로 군대생활은 생각보다 일찍 적응했다. 강원도 양구에서 육군 기갑특기로 34개월의 군생활을 했다. 군시절의 인연이 나중에 건설업에 뛰어드는 계기가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부인과 함께한 전회장의 모습. |
#현장을 지키는 사람은 산다
다시 강원도 인제로 들어갔다. 80년도다. 강원도에서 요식업과 숙박업을 겸했다. 당시 쾌 큰 돈을 만졌다. 우연하게 건설업에 손을 대는 계기가 찾아왔다. 군부대에서 나오던 공사를 맡게 된 것이다. 일을 잘 마무리하며 공사가 계속 밀려왔다. 본격적으로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강원도 인제에서 군부대 공사를 하면서 건설업으로 성장했다. 아이들이 크면서 고민이 깊어졌다. 아이들을 키우기에는 환경이 좋지 않았다. 대전으로 내려오고 싶었다.
“정확하게 88년으로 기억나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백담사 들어올 때 저는 대전으로 내려왔죠.”
건설에 대한 경험을 살려 충북 옥천, 비래동, 삼성동 등에서 연립주택을 신축하고 판매했다. 전 회장이 한 단계 성장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경기도 부천에서 130억원대 상가공사를 맡은 적도 있었다. 베테랑 현장소장들도 다 포기하고 돌아가던 현장이었다.
전 회장은 2년동안 관리이사로 현장을 마무리했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질경이처럼 끈질기게 현장을 마무리했다. 힘든 환경에서 건설업에 대한 많은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전 회장은 뼈저리게 배운 노하우 '현장을 지키는 사람은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달리다 멈추는 법을 배우다
전 회장의 본격적인 주택사업은 2002부터 시작됐다. 주상복합아파트 시장이 열렸다. 서구 둔산동 갤러리아 백화점 주변에 100세대의 주상복합 갤러리빌 1차를 시작했다. 당연히 분양은 성공했다. 이어서 하는 사업마다 순항했다. 유성구 장대동에서 갤러리빌 2차까지 성공분양하며 둔산동, 월평동 사업을 하는 곳마다 완판 행진을 이어갔다. 그러다 2005년 갤러리빌 5차까지 성공분양하며 돌연 사업을 멈췄다. 부동산 시장에 좋지않은 흐름이 감지됐다. 멈추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렸던 잘나가던 건설사 몇 곳이 문을 닫았다. 그러다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가 찾아왔다. 5년을 쉬었다. 2010년부터 갤러리빌 사업을 다시 이어갔고 월평동 9차까지 마무리하며 대전에서만 1500여세대 주택을 공급했다. 주택사업이란 게 소비자가 100% 만족은 없다. 소비자가 주장하는 작은 것이라도 챙겨야 한다. 소비자를 우선생각한 것이 전 회장의 사업성공 노하우다. 부도난 회사들도 본보기가 됐다. 전 회장은 부도난 회사에 대해 연구하며 사업을 이어가는 노하우를 터득했다.
전 회장은 “시대가 많이 변했습니다. 사업하는 분들이 누구다 다 이기고 싶지만 앞만 보고 뛰다보면 넘어질수 있습니다. 쉴 때 쉬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전 회장은 파란색을 좋아한다. 파란색은 하늘을 뜻하고 청명하고 생각도 맑아진다. 좋아하는 색깔처럼 긍정적인 자세로 사업을 이어가는 전 문수 회장에게 대한주택건설협회 대전충남도회장으로서 몇가지 질문했다.
-대한주택건설협회 대전충남도회장 취임소감은.
▲부동산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는 시점에서 회장직의 중책을 맡게 돼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낀다. 어려운 과제들을 살펴 회원사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앞으로 3년 시작이다. 회원사 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시대에 부응하는 자세로 사회환원에도 앞장서겠다.
-취미생활과 인생철학은.
▲아침마다 1시간씩 우성이산 등산에도 나선다. 일주일에 5회 이상은 산을 오르며 소소한 취미생활을 즐긴다. 골프는 80대 중반을 친다. 술은 소주 1병 정도를 마신다. 등산외는 현장에 있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사업장 주변을 떠나면 마음이 편치 않다. 인생철학은 항상 노력하면 길은 열린다. 인간관계에서는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인간관계가 형성될 때 모든 관계가 이뤄진다고 본다.
-주택업계가 어렵다. 현실은 어떠하며 대응방안은.
▲지역 업체들은 대부분 규모가 작은 중소업체다. 공공택지보다 도시형생활주택 등과 소규모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자금사정도 좋지 않다. 수익을 창출하기는커녕 사업축소, 미분양 물량해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회원사들이 주택건설과 동시에 종합건설을 유지하고 있다. 어려운 시기에 방어적인 사업추진과 재무구조를 건전하게 운영, 변화하는 정부정책 등 사업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앞으로 공격적인 사업보다 부도가 안 나고 오래할 수 있는 사업을 가야 승리자가 아닌가 싶다. 사업규모도 줄이고 내 몸에 맞게 이득도 줄이고 사업을 운영해 나가야 한다.
-협회 운영계획과 회원사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회원사의 어려움을 중앙회를 통해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다. 보증수수료인하 등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노력과 지자체를 통해 문제점을 해결하도록 하겠다. 당연히 사회환원에도 앞장서겠다. 국가유공자 주택보수사업, 회원사 가족에게 혜택이 되는 장학금, 생활지원금도 앞으로 지원할 방침이다.
사회구조변화, 금융시장과 소비자 패턴의 변화 등 시장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회원사들도 변화하는 시장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협회와 친숙한 교류와 협조로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 건의로 사업여건이 개선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부탁한다.
대담=백운석 경제부장(부국장)ㆍ정리=조성수
●전문수 회장은…
학력:선화초, 보문중, 대전상고, 대전대 경영학과, 대전대 경영대학원 이력:다우건설(주) 대표이사, 대한주택건설협회 대전ㆍ충남도회 제5대 이사, 대한주택건설협회 대전ㆍ충남도회 제6대 감사, 대한주택건설협회 대전ㆍ충남도회 제7대 부회장, 대한주택건설협회 중앙회 이사, 국토해양부장관표창 수상(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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