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철구 배재대 일본학과 교수 |
그런데 저는 교수님께서 작년 이맘때 왜 그런 키워드를 뽑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치이야기는 그다지 하지 않았지만, 교수님께서는 평등과 자유가 상충될 때 평등과 사람의 권리를 더 중시하시는 약간 진보성향을 보이셨고, 저는 자유와 경쟁에 점수를 더 주는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지요. 그러다 보니 가끔은 대립되어 얼굴을 붉히기도 했으나 다행히 교수님이 갖고 계신 합리적인 판단과 포용력 덕분에 교수님의 세계관은 저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사실 대나무보다는 버드나무가, 맑고 깨끗한 물보다는 물고기가 살만큼의 흐트러짐은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이 제가 부족합니다. 그런데 교수님과 대화하다 보면 제 시간 속에 꽈리를 틀고 앉아 있는 고정관념들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것 같아 감사함을 느낍니다. 예전에는 저의 부족한 부분까지 과대포장되어 평가받은 적이 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인격이 부족했던 젊은 날의 자만이었던 것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어떤 교수님은 나이 지긋하여 인생의 관록이 흠씬 묻어 있는 것 같은데도 자신만의 진한 색깔과 학문적 단절로 장벽을 만들어 고집을 앞세우지만, 사실 우리의 인격과 지위보다 과분하게 사회적 리더로 대접받고 있는 교수라는 직업을 생각해 볼 때 겸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2014년 한 해를 배움이 부족하면 아는 척 하지 말고 자신을 과장하는 행동을 경계해서 실수를 줄이는 연습을 통해 품격있는 한 해를 보내고 싶습니다. 저와 제 주변의 동료 교수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한해가 된다면 그것이 품격있는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니 혹시나 품격있는 2014년을 보내겠다는 결심이 미지근한 목욕물처럼 금방 식어버리는 모습이 보인다면 그럴 때마다 질책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수님. 이제 저도 점점 나이가 들다 보니 화려한 것보다는 수수하고 몸에 편한 것이 더욱 아름답고 좋습니다. 편한 게 좋다고 느끼는 것은 게을러졌다기보다는 자연을 닮아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요. 저는 며칠 전 나이 많으신 모 교수님과 식사할 기회를 얻었는데, 이분은 지금 정년 후에 다가올 외로움을 이겨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오히려 50을 향해 달리는 중년남자의 고독이 노신사의 외로움보다 강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때로는 아내가 옆에 있어도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고, 친구들과 둘러싸여 수다를 떨어도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생이란 것이 낯선 여인숙에서 하룻밤 자는 것처럼 허무하다면 어디 살맛이 나겠습니까? 다만 이러한 순간은 오래가지 않도록 아침햇살에 툭툭 털어내고 기쁜 마음으로 하루를 출발하는 거지요. 교수라는 직업은 이런 외로움을 털어내고 품격있는 지식인으로서 우뚝 설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신 소명(calling)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시인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1865~1939)의 말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교육은 통에 무엇인가를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불을 붙이는 것이다'. 요즘 웬만한 지식은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무엇을 가르쳐 머릿속에 주입하는 시대는 이미 한물갔다고 봅니다. 따라서 저는 2014년의 품격있는 교육이란 결국 제자들 가슴에 불을 붙이는 '성냥'과 같은 역할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싶습니다.
교수님. 말이 길어졌습니다. 춘마곡(春麻谷), 추갑사(秋甲寺)라고 하는데, 지금 못다한 이야기는 봄이 오면 마곡사 들러서 평소 노래하셨던 자연을 벗 삼아 시조 읊으시며 2014년을 품격있는 한해로 보내는 시간을 마련해 보겠습니다. 그동안 평안하게 지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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