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준 중부대 노인복지학과 교수 |
1950년 7월 25일부터 7월 29일까지 충북 영동군 하가리와 노근리 일대에서 미합중국 군인에 의하여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을 말한다. 사건당시 500~600명의 피란민 대열에 미군기가 공중폭격을 가해 100여명이 희생당하고, 살아남은 피란민들은 미 제1기병사단 7기갑연대 소속 군인들에 의해 3박4일 70여 시간동안 노근리 쌍굴에 감금된 채 기관총 및 소총사격을 받아 총 400명에 가까운 무고한 비무장 민간인이 희생된 살상사건인 것이다. 이는 한국전쟁 중 발생한 수많은 민간인 희생사건 중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자, 동시에 그 가해자가 대한민국을 지원하기위해서 투입된 미국측이라는 점에서 그만큼의 특수성과 아이러니를 갖는다. 특히 확실한 진상규명과 그에 따른 희생자와 그 유족에 대한 합당한 배상의 주체가 명료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지금까지 당사자들의 삶에서 온전한 보상의 개념은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매우 안타깝기 그지없다.
지난 2001년 한미 양국의 진상조사를 통해 그 실체가 확인된 후, 빌 클린턴 당시 미국대통령은 희생자들과 한국국민에 대한 '깊은 유감'(deeply regret) 표명하며 노근리사건 희생자에 대한 추모비 건립과 희생자 자녀를 위한 장학금 제공을 약속했다. 그러나 미국측은 유일하게 진상조사가 이루어진 노근리사건만이 아닌, 진상조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미군에 의해 발생한 모든 사건들의 희생자에 대한 추모사업 추진을 고집하는 등 후속조치에 대한 피해자 및 유족의 의견과 큰 차이를 보였다.
결국, 2006년 기금예산은 미국정부 국고로 회수되었고, 노근리사건 피해자에 대한 국제법적 기준을 충족하는 어떠한 보상도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지난 11월 18일, 그 사건으로 인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평화를 염원하고자 국비로 조성된 노근리평화공원에서 피해생존자들을 위한 실질적 복지대책에 관한 노근리평화학술제가 개최됐다. 여기에서 발제자 및 토론자들은 보상 및 배상에 관한 기본적 국가책무의 관점을 주지해야 한다는 입장과 함께 지방정부 차원에서의 합리적 배려 방안에 관한 논의를 진행했다. 일례로 중앙정부가 국비지원을 통한 평화공원의 조성으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생존해 있는 피해자들과 그 유가족에 대한 일정의 노력을 상징화하는 데에 노력해 일정부분 성과를 보았다면, 이제는 지방자치단체 및 지역사회차원의 보다 세심하고 구체화된, 즉 피해당사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생활안정 및 복지지원에 대한 논의와 대책마련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선 노근리사건 피해자 및 유가족의 인권은 곧 기본적인 생활안정 및 유지라는 생존권적 측면과 맞닿아 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사회통합과 화합이라는 인류애적 측면의 공유선상에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와 관련 체감할 수 있는 노근리사건 희생자와 그 유족들에 대한 지역복지차원의 지원이 반드시 요구된다.
여기에는 생존피해자 및 유가족들에 대한 기초생활유지 및 안정자금 지원이 기본이며, 유가족들의 경제적 자립지원을 위한 경제기반기금 조성과 지역사회 내 자원개발과 연계를 통한 사회적 기업 및 협동조합육성 등의 내용이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당장 70~80대의 고령의 나이에 도달한 노근리사건 생존피해 당사자들의 양로지원과 요양보호 문제 등에 대한 해결방안은 더욱 더 시급하다.
이들에 대한 주거안정과 요양을 위한 노인주거 및 의료복지시설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행정 조치와 재원마련 방안 마련이 반드시 요구된다.
아울러 피해자들의 정신적 문제해결을 도모하기 위한 방안의 일례로 광주광역시의 '광주트라우마센터' 같은 인프라구축이 필요가 있다. 이는 5·18민주화운동 등 국가폭력 생존자와 가족을 위한 포괄적이고 다양한 치유프로그램을 제공할 것을 제일 과제로 하고 있다. 이것은 현재 노근리사건 생존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정신적, 정서적 문제에 대한 진단과 치유적 접근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매우 의미 있는 해결방안으로 검토될 수 있다.
이 세상에는 그토록 유명하게 알려진 유태인학살과 그들의 인권문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그 어떤 노력으로 훨씬 더 주목받지 못하고 가려져 있는 수많은 비인도적 사건과 인권문제들에 대한 진실 그리고 그들의 명예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복지적 토대가 다져지길 소망해본다.
'늦었다. 그러나 아주 늦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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