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흥열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전략정책실장 |
'노인 의료서비스', '층간소음', '장애인 생활 편의', '공장 화학물질 누출사고' 등 행사에서 다루어졌던 사회 이슈들은 그다지 생소한 주제들만은 아니었다. 출연(연)을 비롯한 여러 연구기관에서 이미 다수의 과제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이슈들을 한 자리에 모아 과학자들의 연구주제로 폭넓게 토론되는 것은 아직 드문 현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소한 행사에 예상과는 달리 300명을 상회하는 많은 청중들로 북적였다는 점도 새롭다. 사회를 위한 과학기술이 예전과는 다른 새로운 흐름으로 확대되기를 기대해 봄직 하다.
우리도 이제는 경제성장과 풍요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보다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원하고 있다. 과학계에서는 이제 더 이상 공급 중심의 기술경제 시대에서 산출물만을 중요시하는 풍토를 벗어나, 먼저 사회가 어떠한 것을 원하고 무엇에 편의를 느끼는지 이해하고 충족시키기 위한 연구개발 노력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R&D 패러다임 변화'를 통해 과학기술의 정체성이 더욱 선명해 질 것이다.
한편으로는 과학기술 현장에서도 사회·윤리는 이제 필수적으로 고려해야하는 시대가 되었다. 바이오 부문을 예로 들어, 생명복제와 종교·윤리 문제, LMO 식품의 안전성 문제, 유전정보의 해석과 이용에 있어서의 프라이버시와 공정성 문제 등은 이미 익숙한 이슈들이며, 최근에는 실험동물의 이용에서도 윤리적 문제를 고려해야 하고 위반 시에는 법적, 제도적 규제가 가해지는 상황으로까지 변화하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실험동물을 접해야하는 과학자의 심적 갈등과 부담을 이 사회가 간과할 수는 없는 일인 것이다.
이처럼 과학기술과 인문학, 사회학의 만남은 양방향에서의 필요가 충족되는 필연성을 가지고 있으며, 점차 사회 속의 과학(Science in society)에서 사회를 위한, 그리고 사회와 함께하는 과학(Science for society, with society)으로 위상이 변해 가고 있다. 따라서 따뜻한 R&D, 사회이슈 해결형 연구개발과 혁신에 대한 관심을 더욱 제고하고 이러한 혁신활동을 지원하는 체계적 접근이 강화되어야 할 때다.
기존의 기술개발 및 획득에 중심을 두는 방식과 달리 사회문제 해결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문제인식-연구개발-실증-실용화-서비스 제공'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새로운 기획·관리·평가체제가 요구되며, 이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각 기술 부문에서 구체적인 내용과 지향점을 연구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결국, 삶의 가치, 사회문화로서 과학기술의 정체성이 정립됨으로써 과학기술 활동 그 자체가 삶의 긍지와 보람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과학'하는 연구자가 사회 속의 '과학인'으로서의 신뢰를 확인하는 따뜻한 과학기술로 자리 잡고 '핑크빛깔 과학기술'이 이공계를 찾는 젊은 과학도들의 비전이 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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