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혜진 목원대 교양교육원 교수 |
숨가쁘게 기술이 진보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선점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누가 먼저 시장에 내놓는가에 따라 그 점유권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면에서 우리나라는 매우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기술문명의 발전으로 인한 경쟁 못지않게 세계문화유산에 대한 경쟁도 뜨거워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세계 문화가 보편화될수록 각 민족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유산이 강한 문화경쟁력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유네스코에 등재되는 세계유산도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1972년에 인류 보편의 가치가 반영된 문화 및 자연유산을 발굴하고 보호하기 위해 전세계 국가와 협력하기 위한 협약을 채택했다. 190여개국이 이 협약에 가입했으며 2013년까지 962점의 유산이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다. 이 가운데 문화유산이 745점, 자연유산이 188점, 복합유산이 29점이다. 이와 별도로 세계기록유산과 인류무형문화유산 역시 증가하고 있다. 이 중 인류무형문화유산은 인류의 구전 전통, 공연 예술, 관습, 의식, 제전, 전통 기술 등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를 보호하고 전승하기 위해 지정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전세계 88개국의 257점(2012년 12월 기준)이 등재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종묘제례악, 판소리, 강릉단오제, 강강술래, 남사당, 영산재,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처용무, 가곡, 대목장, 매사냥, 줄타기, 택견, 한산모시짜기, 아리랑 등 15건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이 있다. 얼마 전 우리의 김장문화가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우리에게는 16번째의 세계무형문화유산 등록이 되었다. 이 중 판소리는 2003년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에 선정된 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우리 전통 예술인 판소리의 보존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인류무형문화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으니 무척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판소리가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고 전승을 이루고 있는가는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대중에게 외면받고 멀어지고 있는 일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가 전승되기 위해서는 그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지키고 즐겨야 한다. 공연예술로서의 판소리는 더욱 그렇다. 과거 각 지역에서 사랑방에 앉아 판소리를 함께 즐기며 내용을 음미하고 따라 부르던 문화는 이제 무대와 객석으로 달라졌지만 그 가치와 신명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현재 대전시에도 22건의 무형문화재가 지정되어 있다. 이 중 17호 판소리 고법 박근영 보유자와 22호 판소리 춘향가 고향임 보유자는 대전의 판소리 무형문화재이다. 우리 지역의 판소리 문화를 배우고 즐기는 것부터 그 이해를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지금 세계는 자기 고유의 문화를 지키는 동시에 이를 세계 보편의 문화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문화경쟁력을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세계유산을 많이 보유한 나라일수록 문화적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관광자원으로서의 부가가치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세계는 치열한 외교전쟁, 문화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자국의 전통문화는 지켜지고 보호해야 할 수동적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문화선진국을 만들어낼 중요한 보존가치가 되며, 독자적인 문화콘텐츠 개발을 이끌어낼 수 있는 사용가치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의 것을 제대로 아는 것이 결국 문화전쟁에서 승리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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