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택 부여고등학교 교사 |
불행(?)하게도 나는 최근 5년 연속 고3 학생들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곁에서 본 그들은 고3의 1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견디'고 '버티'어 내고 있었다. '견디'고 '버티'는 정도로 인생을 논한다면 그들은 인생에서 가장 참혹한 1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견디고 버티어 내다가 '수능'을 치르고 나면 일순 모든 불안감과 압박감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수능 이후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오히려 수능 전보다 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능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학생은 좌절감에다 패배의식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수능 후의 고3학생들의 속은 숯덩이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최근 여러 언론에 수능 후의 고3 교실이 기사화되었다.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하라는 것인지, 또는 그럴싸한 대안을 마련하라는 것인지 모호하지만 어쨌거나 지금의 고3교실의 혼란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논조가 대부분이었다. 매년 수능 후의 고3교실의 풍경이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올해는 유독 고3교실이 더 혼란스럽게 된 데에는 나름의 속사정이 있다.
올해 수능은 국어와 영어에서 쉽고 어려운 유형으로 나뉘어 치러졌다. 따라서 상위권 학생이라도 상대적으로 국어와 영어의 등급 따기가 무척 어려워졌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탐구와 과학탐구의 선택이 2과목으로 줄면서 이 또한 등급 따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대부분의 대학이 탐구과목의 반영을 2과목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학생들에게 이른바 버리는(?) 과목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3과목을 보고 2과목을 반영했던 작년이나, 4과목을 보고 2과목을 반영하던 재작년과는 많이 달라진 것이다. 그동안 탐구과목은 국·영·수 기초가 없는 학생들이 등급을 따기 위한 희망의 샘물 같은 것이었지만 올해 학생들에게 탐구과목은 절망만 안겨 주었다.
이렇게 거의 모든 과목의 등급 따기가 예년에 비해 어려워졌지만 대학의 수시전형에 사용하는 최저학력기준은 전혀 낮추어지지 않았다. 수시에 원서를 내놓고 최저학력기준을 맞추려는 학생들에게 올해 수능은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요지부동의 난공불락이었다. 그런 이유로 해서 고3 교실은 멘붕 상태의 혼란에 빠져 있고 고3 수험생들은 수능 이후에도 또다시 '견디'고 '버티'어 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속사정을 알 리 없는(아니 더 잘 알 수도 있을) 언론은 겉으로 보이는 풍경만 보도해 고3학생들의 마음을 더 시커멓게 태웠다. 유치원 과정을 제외한다 해도 우리 학생들은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2학년까지 11년, 거기에다 앞에서 말했던 '사람이 아닌 고3'의 생활 1년을 더하여 12년을 학교에서 전념하며 생활한다. 그 12년 동안 이 땅의 고3 학생들은 수능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이라는 말을 숱하게 들으며 수능만을 바라보고 공부해 왔다. 그러나 기대와 다른 수능 성적의 결과로 그들은 자신을 인생의 패배자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저히 따라갈 수 없게 변하는 입시 제도와, 인생을 단 한 번의 시험에 걸어야 하는 수능의 모순을 단번에 해결할 묘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 글에서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12년 동안 죽자사자 공부해 온 학생들을 잠깐 동안이라도 그냥 그대로 너그럽게 보아 주자는 것이다. 그냥 그대로 너그럽게 보아주는 그것만이 바로 12년 동안 공부해온 고3 학생들에게 이 땅의 어른들이 베푸는 단 한 번의 관용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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