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규 자치행정부장(부국장) |
“우리는 지금 2위에 머물고 있지만 반드시 1위에 올라설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아낌없는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그리고 광고디자인은 작은 숫자 '1'로 큰 숫자 '2'를 그려놓았다. 그들의 노력은 결국 만년 2위권을 벗어나 어느 날 미국 중고차 판매시장의 정상에 올라섰다. 회사는 그 기쁨을 이렇게 또 전미국민들에게 알렸다.
“드디어 우리가 해냈습니다.” 아울러 광고디자인으로 작은 숫자 '1'로 큰 숫자 '1'을 그려냈다. 그런데 아뿔싸! 그들의 정상질주는 단박에 끝났다.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채움이다. 소비자들은 정상에 오른 그 회사의 매너리즘과 자만심을 경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상을 밟기 위해 노력해온 초심을 잃어 가고 있다는데 실망했던 것이다.
다시 그들은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이런 카피를 내놓았다. “우리는 다시 2위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1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형태의 광고가 1980년대 후반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느 회사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날로그 시계를 12시5분전으로 그려놓고 12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내용이다. 근래에는 뭔가 약간의 서운함과 부족한 느낌을 던져주는 듯한 카피가 인기를 끈적도 있다.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동정심을 유발하는데 착안한 기법인지 모르겠다.
이렇듯 광고기법에서 비움과 채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있어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조금은 비약이 될 수 있지만 비움과 채움은 최근 절실히 요구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와도 큰 연관성을 지닌다. 그리고 정치분야에서의 비움과 채움은 그 관계가 더욱 복잡해진다.
우선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 비움과 채움은 올해 대전지역의 최대 화두인 사회적 자본과 궤를 같이한다. 존경과 배려, 나눔과 봉사, 신뢰와 소통 등. 채움이 아니라 비움으로써 가치가 더욱 빛난다. 누군가 그랬다.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고 채우고 그리고 비우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리고 무엇을 채우고 무엇을 비울지는 개개인의 인생에서 구할 답”이라고…. 정치권이 펼치고 있는 비움과 채움에 대해 일반 시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한마디로 이는 존경과 과욕 내지 오욕으로 비춰진다.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내년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런 비움과 채움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같은 비움의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8월27일 염홍철 대전시장의 불출마 선언이다. 2010년 7월 민선5기 출범과 함께 이번이 마지막 임기라고 결심하고 차기 선거를 무려 1년 가까이 앞두고 불출마 선언을 단행한 그의 행보는 정치권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더욱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시장으로 유력시되는 그였기에 당시의 불출마 선언은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염 시장은 “지금 생각해도 백번 잘했다. 후련하다. 공직생활 40년만에 휴식다운 휴식을 할 수 있어 너무 좋다. 이제 자유인이다”며 진한 속내를 풀어냈다.
반면 채움은 11월5일 당적을 바꾸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우근민 제주지사가 아닐까 생각된다. 우 지사는 2010년 5월30일 6·2지방선거 막바지 유세에서 “저는 욕심이 없다. 당선이 된다면 단 한번만 할 것이다. 우근민은 신의를 제일 중요시한다. 민주당을 사랑한다. 민주당은 저의 뿌리이자 정치적 고향”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날 우 지사는 이번이 “마지막 출마”라고 지지를 호소하며 당선됐다. 그러던 그가 6·4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서 새누리당으로 옮겨가며 재선을 노리고 있다. 우 지사는 임명직과 민선을 합쳐 지금까지 5번째 제주지사직을 수행중이다. 그는 6번째 지사를 위해 또 한번의 채움을 선택했다.
비움이냐 채움이냐는 강요가 아니라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는 고스란히 자기 몫이다.
'사회적 자본 확충'이란 화두와 함께 불출마 선언으로 정치권을 달구고 있는 염홍철 시장의 '비움'이 다시금 지역사회와 나라발전에 봉사하는 더 큰 채움으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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