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호택 연세소아과 원장 |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비록 한정된 장소에서 정해진 성과 이상을 내기는 힘들지만 이런 따뜻한 마음들이 모이면 어둡고 추운 곳을 사랑의 마음으로 비출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금산 지역 로타리클럽들이 연합으로 겨울나기가 힘든 분들에게 연탄을 배달해주는 과정에 함께 했다. 부끄러운 얘기이지만 '몸으로는' 처음 참여하는 일이었다. 연탄 한 장 무게가 3.5㎏이나 된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70~80명의 남녀 회원들이 모여 릴레이로 연탄을 나누는 과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큰 즐거움이었다.
할머니 혼자 사시는 집 광에는 연탄이 달랑 한 장 남아 있었다. 수백 장 연탄을 쌓아드리고 나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두 분 노부부만 사시는 어떤 집에는 이미 수백 장의 연탄이 쌓여 있었다. 일순 당황했다. 집안을 둘러보니 삶이 팍팍하신 분들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은데, 연탄만 부자였다. 다른 도움이 필요하신 분일 것이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지만 그 자리에서 정해진 일정을 변경할 수는 없었다.
마음 따뜻한 것도 중요하지만 효율적으로 정말 필요한 곳에 필요한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포스트와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금산 지역에서 연탄을 통해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주체는 아무래도 금산연탄은행일 것이기에 관계자를 만나 상의하는 중에 이 분들의 어려움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하나에 500원 정도 하는 연탄은 구매보다 운반이 더 어렵다. 특히 가야 할 곳이 언덕배기 달동네라면 더욱 어렵다. 그래서 금전만으로 해결하기 힘든 '검은 땀'의 봉사활동이 필요하다.
연탄봉사의 주체로 지자체도 있다. 그런데 지자체의 봉사에는 이 '검은 땀'이 없다. 그저 쿠폰을 나눠줄 대상을 선정하고 500여 가구의 대상자에게 16만9000원 상당의 쿠폰을 나누어주는 것으로 그들의 역할은 끝난다.
금산군청에서 각 읍·면사무소로 전달하기만 하면 된다. 담당자는 연탄이 어떤 집에 어떻게 배분이 되는지 알지 못한다. 알 필요도 없다.
쿠폰 받은 사람이 연탄을 판매하는 업자에게 쿠폰을 제시하면 300장 이상의 연탄이 배달되어야 마땅하지만 실제로 배달되는 연탄은 그보다 더 적다고 한다. 배달의 어려움 때문이다. 쿠폰을 받은 주민이 '개별적으로' 배달업자에게 그 쿠폰을 주면 실제 배달되는 연탄은 200~250장 정도라고 한다. 게다가 배달이 어려운 언덕이나 외진 곳에 사는 집에는 배달 자체를 거부한다는 말도 들린다. 이익도 없는데 힘만 드는 일을 업자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그 사람에게는 생계가 달린 일이다.
금산연탄은행이 '배달하는 역할도 맡겠다. 쿠폰을 우리에게 달라'로 군청에 제안했지만 답이 없다고 한다. 이장을 통해 쿠폰 전달하면 자신의 임무가 끝나는데 그럴 이유가 공무원에게는 없다. 머리만 있고 마음이 없는 것이다.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쿠폰의 20~30%는 연탄이 필요 없는 집에 배당된다고 한다. 기름이나 나무를 때는 가구에도 쿠폰이 전달되고, 심지어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에 배당되는 일로 있다고 한다.
연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집은 겨울을 나는데 800장 이상이 필요하다고 한다.
내가 세브란스 병원에서 소아과 수련 받으며 듣고 가장 가슴 아팠던 말은 환자 진료 중에 실수를 하거나 대응이 늦었을 때 '네 자식이라면 이렇게 했겠느냐?'는 김병길 과장님의 꾸짖음이었다. 책상머리에 앉아 행정하는 공무원들에게도 같은 말을 하고 싶다.
춥고 힘든 세상에서 연탄의 열기가 조금이라도 더 퍼지려면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여는 소통이 필요하다. 여러 봉사단체들도 서로 소통하고 지방자치단체도 함께 생각하고 논의하는 자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연탄 몇 장 나르면서 느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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