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구]씨름과 스모에서 한·일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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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구]씨름과 스모에서 한·일을 보다

[시사 에세이]강철구 배재대 일본학과 교수

  • 승인 2013-12-09 15:58
  • 신문게재 2013-12-10 16면
  • 강철구 배재대 일본학과 교수강철구 배재대 일본학과 교수
▲ 강철구 배재대 일본학과 교수
▲ 강철구 배재대 일본학과 교수
2004년 2월, 월드컵 한일공동개최로 맺어진 우정을 더욱 깊게 다지기 위해, 그리고 우리 땅에 일본문화를 전면개방하게 된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 해방 이후 최초로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일본의 국기인 스모(相撲)가 그 모습을 드러냈었다. 그러나 스모가 몽골과 우리나라 씨름의 영향을 받은 스포츠라는 것을 아는 이들은 의외로 적다.

일본의 스모가 백제 왕족을 환영하는 행사로 시작해 일본 황실의 상징적인 제의(祭儀)로 발전했다고도 하고 추수의 길흉을 점치는 신앙형태로 출발했다는 설도 있다. 일본에서의 스모에 대한 기록은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등장하고 있지만, 본격적으로 무사들에게 이를 장려한 것은 가마쿠라막부시대였으며, 이후 에도시대에 접어들어서야 대중화되었다고 한다.

스모나 씨름은 둘 다 맨손으로 경기를 벌여 오십보백보인 것 같지만 다른 점도 많다. 스모는 씨름판보다는 작은, 직경 4.55m의 '도효'라고 하는 원형 경기장에 들어가서 경기를 하며 선수들은 모두 스모협회에 가입되어 랭킹별로 월급을 받는 샐러리맨이라고 한다. 스모는 떨어진 상태에서 맞붙게 되지만 씨름은 서로 상대의 샅바를 잡고 일어나면서 시작한다. 스모는 손바닥으로 상대의 뺨을 때리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주먹으로 가격해서는 안 되며 양쪽 귀를 동시에 두 손으로 쥐어서도 안 된다. 머리카락을 고의로 잡아당겨서도 안 되고 눈이나 명치 등 급소를 찌르는 것도 금지다.

한편 스모는 단판승부다. 마치 사무라이들이 일본도로 맞붙어 싸우는 것처럼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우리의 씨름은 3판 2승으로 승부를 가리며 결승전은 5판 3승이다. 이를 굳이 해석하자면 참된 실력을 알려면 적어도 2번 이상은 붙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한민족의 너그러움이라고 할까.

또한 스모는 씨름과 달리 체급이 없다. 승부의 세계에 체급 따위가 왜 필요하냐, 이기거나 지거나 둘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나보다. 또한 스모는 이겨도 침묵한다. 무표정해야 하고 말을 하지 말아야 하며 감정을 억제해야 한다.

이에 비해 씨름은 포효하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두 팔을 벌려 소리치면서 기쁨을 마음껏 표현한다. 또 하나 다른 점으로는, 발바닥 이외의 신체부분이 바닥에 닿거나 도효 바깥으로 한 발짝이라도 넘어서면 게임에서 지는 것이다. 씨름은 그럴 경우 무효로 하고 다시 씨름판으로 들어와 경기를 속행한다.

이렇듯 일본은 스포츠에서도 경계가 갖는 의미를 확실히 한다. 섬나라이기 때문에 제 땅에서 밀려나면 물에 빠져 죽게 된다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지정학적인 요소까지 숨어 있는 씨름과 스모의 차이다.

한편 스모는 일본에서 국민적 인기를 누리며 NHK가 모든 경기를 생중계 하고 있지만, 우리의 씨름은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침체에 빠져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씨름연맹의 홍보와 마케팅에서 전문성과 능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한다. 시대가 변했는데도 씨름판에는 여전히 농악놀이나 민요가수들로 흥을 돋우려 한다. 물론 의미있는 행사이긴 하지만 젊은층 입장에서는 다양한 볼거리가 부족하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보는 씨름에서 참여하는 씨름으로 전환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스모 경기는 1분 정도에 승부가 가려지지만 경기 전후의 세레머니가 화려하고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아무런 사전 세리머니 없이 두 선수가 나오자마자 대뜸 샅바잡고 우열을 가리는 한국 씨름에 재미를 느낀다는 것은 정말 씨름을 좋아하는 일부 팬 이외에는 외면받기 쉽다.

씨름이 대중에게 사랑받고 민족 경기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은퇴선수인 강호동이나 이만기 등과 같은 스타선수를 육성해야 하고 다양한 홍보와 마케팅전략을 통해 관객들의 관심을 유발할 필요가 있다. 씨름을 청소년들에게 우리의 것을 알리는 '교육의 장소'로 활용하는 것도 제안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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