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는 예부터 '한단새'의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한단새는 평생 집이 없이 산다고 한다. 밤이 되어 추워지면 몸을 움츠리고 생각하기를 '내일은 꼭 집을 지어야지…'
하지만 또 다시 날이 밝아오고 따스한 햇볕이 비치면 한단새는 집을 지어야 한다는 생각은 온데간데 잊어버린다. 집을 지을 생각은 커녕 신나게 놀기만 한다. 그래서 한단새는 평생 집 없이 살면서 매일같이 후회를 반복한다고 한다.
한단새의 전설에서 생각해 볼 것은 자기의 일을 게을리하거나 남에게 미루는 사람은 얻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요지다. 어느 조직이건 간에 각자의 업무가 있지만 자기 일을 게을리하거나 남에게 미루는 상황은 종종 발생한다.
하지만 조직의 분위기나 특성상 일을 게을리하거나 남에게 미뤄도 높은 평가를 받는 때가 있다. 또 최선을 다해 일하더라도 좋지 못한 평가로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있다. 게으른 자의 높은 평가나 최선을 다한 자의 낮은 평가, 이것도 개인의 능력에 속하는 것인지는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 사회의 빈부 격차는 심화되고 있다. 쪽방촌은 고사하고 밤에 제 몸 하나 쉴 곳이 없어 거리로 내몰리는 노숙자들, 대학 등록금이나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가 일상이 된 청소년들.
사회가 발전할수록 가진 자들의 여유와 풍요에 비해 없는 자들의 빈곤과 쪼들림은 극과 극을 이룬다.
정부가 없는 자들의 복지를 위해 어마어마한 세금을 무조건 쏟아부으라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그들이 빈곤으로 내몰린 데에는 다 이유가 있고, 있는 자 또한 풍요로움을 만끽하는 이유가 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노력이 없는데도 풍요와 여유를 누리거나, 뼈가 으스러질 정도의 노력에도 빈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되짚어 볼 일이다.
우리 속담에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다. 지금은 '개천에는 지렁이도 없다'는 말이 이론적으로 맞을 것 같다. 그만큼 개천에서 용이 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설령 개천에서 용이 됐다고 할지라도 소외되거나 외면받기 일쑤다.
출신성분이 다르다보니 태생부터 용이었던 그들만의 리그에 속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자본주의 민주사회에서는 공정, 공평한 경쟁이 보장되어야 한다. 한단새와는 반대로 매일같이 최선을 다해 삶을 꾸려가는 대다수 국민이 아직도 목표와 희망의 끈을 놓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영록·행정자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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