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태 변호사 |
틀림없이 교과서에는 있는 단어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교과서에 존재하는 단어가 되었다는 것이다. 도덕? 그런 말이 있었지라고 하는 과거 존재로서의 골동품으로 전락한 것이다. 우리사회는 이미 삶의 기준이 도덕이 아닌 법으로 대체되어 버렸다. 법에 위반되지 않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그것은 정당한 것이라는 것이다.
과연 법에 위반하지 않은 것만으로 모든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일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으로서의 행동의 기준은 도덕이어야 하며 법은 단지 '도덕의 최소한'을 의미할 뿐이다.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는 것은 법이 이를 시키지 않지만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고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이끌어야 하는 것은 법이 아니라 도덕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법이 마치 우리사회를 이끌고 있으며 그것이 올바른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을 보라. 자신의 행동이 법의 심판에 따라 법에 위반되지만 않는다면 자신의 행동이 정의(?)로운 것이라고 강변하는 것이다. 대기업의 CEO들은 또 어떠한가? 법에 의해 처벌 받아야 할 잘못도 사회 공헌도가 크다는 이유로 용서해 달라고 탄원을 하고 있는 것이 우리사회의 도덕성인 것이다. 우리 사회는 도덕이 이미 사라진 것이다.
이러한 도덕의 실종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법이라는 허울 좋은 탈 뒤에 숨은 위선과 비양심이 판을 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법이 법에 의하여 양심에 대한 실종선고를 해 버린 것이다. 부모와 자식이 재산문제로 싸우고 이것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사회. 동네 구멍가게뿐 아니라 어려운 사람의 삶의 터전이었던 재래시장까지 철저하게 유린한 대형마트의 횡포를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용인하는 사회. 심지어 동네 빵가게와 찻집까지도 존재할 수 없게 한 그들 - 자유경쟁이라는 이름하에 법에서 허용된다는 '적법'이라는 위선 뒤에 숨겨진 착취행위를 눈감아 주는 것이 정당한 사회, 자유롭고 평화로운 사회의 도덕(?)인 것이다.
이처럼 철저하게 법에 의해서만 지배를 받는 사회가 절대로 정의롭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사회가 한 발짝 더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바로 이러한 법이 아닌 도덕성의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법과 도덕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형제지간이다. 물론 도덕이 형이고 법이 아우인 것이다. 하지만 그다지 사이가 좋은 관계는 아닌 것 같다. 제대로 함께 조화롭게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형인 도덕의 말에 아우인 법이 잘 순종해야 하는데 원래 법은 천방지축으로 태어나서 형의 말을 잘 듣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바로 태어날 때부터 아우인 법은 휘두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형인 도덕은 아무런 힘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형인 도덕은 아우인 법에게 점잖게 타이를 수밖에 없으니 아우인 법이 말을 잘 들을 리 없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발전하여 이제 우리사회에서는 아우인 법이 형인 도덕을 추방해 버리기에 이른 것이다.<계속>
(법무법인 저스티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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