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받은 시집 『아내의 전성시대』를 챙겨가길 잘했다. '마누라 음식 간 보기'를 KTX 열차 안에서 돌려 읽고는 부부가 함께 쿡쿡 웃었다. 잔잔한 일상이 잘 익은 된장 같은 시가 되니 경이롭다. “달콤한 성교 없이 사느니 차라리 100번도 더 죽는 게 낫겠어요”라는 1900년 전의 소설 『황금 당나귀』의 구절, “내 앞 수건은 건드리지 말고요. 삽살개도 짓지 않게”라는 얄미운 '밀당'을 기원전의 시경(詩經)에서 건졌을 때처럼 신기하기도 했다.
피자 조각만한 시 한 조각의 힘은 컸다. 지난 주말의 짧은 용산 나들이를 가벼운 농담처럼 바꾸어놓았다. 시인이 그리는 사랑은 '사랑'의 원뿌리인 '혜윰'(헤아림, 생각) 그 정서다. 세상에는 욕망과 성욕을 '카마(kama)' 한 단어로 뭉쳐 쓰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와 구분되는 사랑의 결정체로서의 정(情)이었다. 사랑으로 결혼하고, 결혼하고는 그놈의 사랑이 문제될 때 절실한 건 욕망이나 갈망이 아닌 헤아림이며 생각이다.
잘해주고 살뜰히 신경 써주는 '고운 정'만이 아니다. 막 대하고 서운한 '미운 정'도 정의 한쪽 기둥이다. 18개월이니 30개월이라는 '유통기한'(판매 가능 기한)을 지닌 것이 사랑이라면 기한을 넘겨서도 무해한 '소비기한'은 정이다. 마구 솟구치던 뇌의 도파민, 페닐에티아민이 사라져 연애의 불꽃을 상실해 '제조일자', '품질유지기한'으로도 지탱하기 힘들 무렵의 언어는 단일해야 한다. 아내들도 재미없는 진실보다 “맛있네!”와 같은 섹시한 거짓말을 더 원할 때가 있다. 세상은 암컷들 선택대로 흘러간다는 비교행동학자 칼 그람머의 판단을 집안에서는 믿어야 평화롭다.
숟가락에 뜬 국물, 좌삼삼 우삼삼 구운 생등심 조각을 내미는 아내들은―부엌살림 경력 20년 이상이면 더더욱―짜다, 싱겁다 따위의 정직한 품평을 바라지는 않을 터이다. 게다가 정까지 버무렸다. 구한말 프랑스 선교사가 '조선인들은 힘으로 뭉치면 약하지만 정으로 뭉치면 로마 병사보다 강하다'고 예리하게 파헤쳤다. 그 좋고도 무서운 정이다.
그러므로 나이 들수록 '사랑'으로 쓰고 '정'으로 읽어야 한다. 결혼 20년 이상 황혼이혼이 4쌍 중 1쌍으로 결혼 4년 이하 신혼이혼을 처음 앞지른 것도 어찌 보면 이걸 잘못해서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가장 오래 사랑할 사람과 결혼하라는 말뜻을 곱씹어보게 한다. 황혼이혼 2쌍 중 1쌍은 미성년 자녀가 없다. “애들 때문에 산다”는 말이 통계로 증명된다. 결혼정보시장에는 살아보고 재혼하는 '계약재혼' 상품까지 나왔다. '결혼이 모든 희극의 마지막에 오는 것'임을 알기에 그런 것인가.
초·재혼 어느 쪽이든 별도 달도 따줄 것 같은 '깨신혼'이 지나자마자 정은 특별관리가 필요하다.(사진은 소스에 넣을 깨를 빻는 필자의 손). 척박한 삶, 허구한 날 사랑의 유효함에 목매는 이들에게 인생 무게 툭툭 덜어낸 노시인의 생존 정신, “참 맛있네!”는 명품 답안이다. 사람 심리는 말이나 행동을 감정이 따르기도 한다. 슬퍼서도 울지만, 울면 슬픔의 감정이 격해진다. 포옹으로 사랑이 고양될 수 있다. “음, 맛있네!”를 연발할수록 맛있는 해피엔딩으로 갈 확률이 높아진다. “간간하다”고? “싱겁다”고? 가만히 속으로 삼킬 일이다.
최충식·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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