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취한 어른·담배 연기뿜는 아이들… '빼앗긴 쉼터'

술취한 어른·담배 연기뿜는 아이들… '빼앗긴 쉼터'

대전 603곳 청소년 탈선 등 우범지대 전락… 지역 범죄발생 꾸준히 증가 소통의 장 활용·CCTV 설치 등 '시민의 공간' 되찾아야

  • 승인 2013-12-05 17:55
  • 신문게재 2013-12-06 6면
  • 이상문이상문
●[이슈 집중취재]외면받는 도심 공원… 대책은 없나?

▲ 인적이 없는 대전의 한 공원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다.
▲ 인적이 없는 대전의 한 공원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다.
#1. 대전시 동구 A아파트에 사는 김모(38) 주부는 얼마전 집 주변 소공원을 지나가다 깜짝 놀랐다.공원 안에 조성된 정자에 교복을 입은 학생 4~5명이 모여 앉아 술을 먹으며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을 데리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김씨는 “산책을 하거나 휴식을 취해야 할 공원이 방치되면서 청소년들이 모여 술을 먹는 등 탈선 장소로 변질되고 있다”며 “혈세로 조성된 공원인 만큼 시민들이 맘 놓고 이용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도 점검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주부 이모(43)씨도 “학생들이 방과 후 학원에 가는 오후 시간에 공원 안 쉼터에서 남학생들이 모여 하얀 담배연기를 뿜어 대는 모습을 종종 본다”며 “혹시 봉변을 당하지 않을 까 걱정돼 공원 근처도 가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2. 밤 늦은 시각 대전 서구 괴정동 우정어린이공원. 가로등 아래에 노인들이 술판을 벌이고 있다. 소주와 페트병 맥주가 뒤섞여 공원인지, 술판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술기운이 돌자 일부 노인들은 소리를 지르고, 웃통을 벗는 등 본격적으로 술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인근에는 아무렇게나 본 소변 지린내 때문에 숨 쉬기조차 힘들다.

근처에 사는 김모(48ㆍ남)씨는 “밤중에 이곳을 지나다 보면 깜짝 놀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라며 “자칫 몹쓸 짓을 당할까봐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빨리 지나가곤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루 빨리 시민들이 안전하고 쾌적하게 다닐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민 휴식 공간이 탈선 장소로=대전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어야 할 공원이 청소년 탈선과 취객 행패 등으로 이용객들이 불안에 떨고 있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공원이 방치돼 발길이 끊기면 주변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되는 것이다.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여가생활을 즐기기 위해 공원을 찾고 싶은 시민들은 혹시나 범죄 피해나 안좋은 일을 당할까 걱정하며 발길을 돌리고 있다.

공원 관련 주요 민원으로는 청소년 탈선이 주를 이루며, 취객이나 노숙자에 의한 신고도 종종 발생한다. 청소년 탈선은 주로 하교시간대에 청소년들이 학교 주변 공원에 모여 음주, 흡연 등의 행위를 벌이는 경우다. 야간에는 학원이나 도서관 주변 공원에서 탈선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또 공원 인근 음식점과 유흥업소에서 술을 마신 취객들도 공원에 들어와 소란행위를 일으키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

노숙인도 공원에 골칫거리 중 하나다. 이들은 벤치나 화장실에서 잠을 자거나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노상방뇨 등 소란 행위를 일으켜 이용객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대전경찰청에서 올해 지난 6월말부터 8월말까지 3개월간 청소년들의 음주 · 흡연, 고성방가 등으로 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36곳의 공원을 선정해 순찰을 강화했다. 그 결과 342명의 청소년 탈선 계도활동을 했으며, 고성방가 55명, 수배자 10명을 잡았다. 특히 지난 8월 12일에는 대전 중구 선화동 소재 바라공원에서 공원 순찰 중 여성을 강간하려던 40대 남자 1명을 검거하기도 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해 펴낸 '공원안전 강화를 위한 CPTES 적용' 보고서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전국 공원에서 발생한 범죄는 총 3만9475건, 연평균 3940건이나 됐다.

대전은 10년간 총 1001건의 공원범죄가 있었으며 2006년 이후 100건 이상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공원이 시민들에게 외면된 채 방치가 지속될 경우 치안의 사각지대로 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공원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을 경우 범죄의 섬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늘어나는 공원면적, 관리는 부실=대전시에 따르면 작년말 기준 대전의 공원 수는 총 603곳에 이른다. 이중 조성된 공원이 327곳이며, 94곳은 조성 중이고 나머지 182곳은 미조성 상태다.

큰 규모의 공원 10곳은 대전시가 직접 관리하지만 대부분의 공원은 각 구에서 관리한다. 동구가 89곳, 중구 93곳, 서구 132곳, 유성구 181곳, 대덕구가 96곳을 각각 운영하거나 조성 중이다.

시민들이 생활 여건이 향상되며 여가 등 생활주변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지속적으로 공원수는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유지보수나 안정성 확보 등 관리에 대한 관심은 높지 않다.

올해 대전시가 공원시설 녹지 유지보수를 위해 책정된 예산은 단 105억에 불과하며, 대부분 조경관리비로 쓰인다.

대전시 관계자는 “한정된 예산으로 대전 살림을 운영하다 보니 공원 관리에 적은 돈이 책정될 수 밖에 없었다”며 “공원내 조경 관리나 시설 유지보수에 대부분 비용이 쓰이고 있어 다른 부분을 신경 쓸 여력이 부족하다 ”고 말했다.

공원이 우범지대로 전락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폐쇄성'에서 찾을 수 있다. 공원 대부분이 나무 담장 등으로 둘러 쌓여 있어 공원 안을 볼 수 없으며, 조명 수가 상당히 부족해 공원 전체를 커버할 수 없다.

특히 오래 전 조성된 공원일수록 이런 폐쇄성이 하나의 특성으로 자리 잡고 있다.

중구에 한 오래된 공원 인근에 사는 임모(38ㆍ여)씨는 “밤만 되면 구석지고 잘 안보이는 벤치에서 청소년들이 우르르 모여있는데 무서워서 지나가기도 싫다”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공원에 발길이 끊기고 더욱 무서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범죄 우려가 큰 공원은 결국 시민이 외면하게 되고 더욱 우범지역이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공원 관리가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다.

▲공원을 내집 앞마당처럼=공원에 무질서를 부추기는 요소들이 많아 이용객들이 없어진다면 결국 공원은 우범지대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공원의 안정성을 높이려면 먼저 시민들이 주인의식을 가져야한다. 공원의 주인이 시민이라는 점을 강조하면 탈선행위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부담은 느낄 수밖에 없다. 이에 해외에서는 지역 문화행사를 공원에서 개최해 시민들이 자주 찾도록 하거나, 지역 시민들의 소통의 장으로 활용한다. 공원의 설치 규정을 완화해 상주 인원을 늘리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공원 내 시설 관리도 중요하다. 공원의 시설이 노후화 되거나 쓰레기 등이 방치될 경우 취객이나 노숙자들이 모일 가능성이 높다. 지자체가 지속적인 예산 확보와 전담인원 등을 배치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 또 공원 설계 시 범죄 예방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재는 환경 설계를 통한 범죄예방(CPTED)이론이 적극적으로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를 기존 공원에 까지 확대 적용해 리모델링이나 개보수할 필요성이 있다. 공원 주변의 시야 확보를 위해 일정 간격으로 조경을 설치하고 공원 시설물의 위치를 잘 알 수 있도록 이정표도 곳곳에 설치해야한다. 어린이 놀이 시설의 경우에는 특히 공원 입구나 관리사무소 인근 등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곳에 만들어야 한다.

지자체의 공원안전 시설 확대 설치도 중요하다. 지속적인 조경을 통해 외부와 차단된 공원의 시야를 확보해 줘야한다. 여기에 CCTV 설치나 가로등 등의 설치로 공원이 안전한 장소로 인식시켜야 한다. 적절한 위치에 설치된 CCTV는 훌륭한 방범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대전발전연구원 이형복 박사(도시안전센터)는 “과거 휴식 공간으로 쓰였던 공원이 최근 사람이 모여 생활하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안전에 대한 다각도의 고민이 필요하다”며 “도시를 설계하고 행정하는 지자체에서 공원 설계 전부터 CPTES 등을 적용해 안전에 신경써야하며, 조례 제정이나 예산ㆍ인력을 늘려 사후관리에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문 기자 ubot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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