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목척교가 생경하다

  • 오피니언
  • 미디어의 눈

[우난순]목척교가 생경하다

[중도시감]우난순 교열부장

  • 승인 2013-12-05 14:29
  • 신문게재 2013-12-06 17면
  • 우난순 교열부장우난순 교열부장
▲ 우난순 교열부장
▲ 우난순 교열부장
이제까지 강과 내川에 있는 크고 작은 다리를 많이 봐왔다. 하지만 대전천의 목척교는 과거에 내가 본 어떤 다리보다 흉악하고 우스꽝스럽다. 당당하고도 한없이 위압적인 데다가 결정적으로 기괴스럽다. 머리 위에서 하늘을 가린 채 보행자를 압도하는 아치형의 조형물은 당혹스러움을 준다. 교각은 콘크리트이며 조형물은 회색의 철제구조물로 된, 안타깝게도 목척교는 지극히 단순하고 형편없이 각박하다. 자동차만이 다리 위를 빠르게 지나다닐 뿐 보행자는 경치를 감상할 시선을 차단당한다. 목척교를 건너는 즐거움이 없다. 단지 빨리 이 다리를 지나가야겠다는 생각 뿐.

우리가 볼 수 있는 오늘날의 다리들은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지만 우리 조상들이 만든 다리들은 운치가 있었다. 몇 년전 여행길에 버스를 타고 지나던 중 충북 진천의 농다리를 보았다. 그 다리가 너무 아름다워 버스가 모퉁이를 돌아 안보일 때까지 고개를 빼고 보며 감탄했다. 고려시대에 축조됐다는 농다리는 돌을 쌓아 교각을 만들고 그 위에 장대석을 올려 상판으로 삼아, 돌로 된 다리의 원형을 보여준다. 물소리, 숲속의 바람과 더불어 돌다리를 건너는 흥겨움이 절로 느껴져 언젠가 꼭 저 다리를 건너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세계의 많은 도시는 아름다운 다리를 간직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베키오 다리, 프라하의 카렐 다리,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는 도시와 강, 바다, 다리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 예술품으로 평가받는다. 아! 영화 속의 비련의 다리도 있다. '애수'에서 여주인공 비비안 리는 안개 낀 다리위에서 달리는 트럭에 몸을 던진다. '워털루' 다리에서. 자욱한 안개 속의 희미한 가스등의 불빛, 그리고 다리 난간에 서있는 비비안 리의 슬픔 가득한 눈빛. '워털루' 다리는 1차대전 막바지의 남녀의 사랑과 슬픔의 정취가 흠뻑 묻어나는 스토리 풍부한 런던의 다리가 됐다.

다시 목척교로 돌아가보자. 목척교는 대전천생태하천 복원차원에서 2010년 설치됐다. 대전천을 정비하고 산책길도 조성됐다. 대신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중앙데파트는 대전 최초의 백화점으로 대전 상권의 중심이자 상징이었다. 그만큼 대전의 역사성 있는 건축물이었다. 대전천 주변의 한 상인은 “(목척교 조형물 설치는) 한마디로 돈지랄 한거다. 홍명상가, 중앙데파트 있을 땐 사람들이 웬만큼 왔다갔다 해서 왁자지껄했다. 지금은 썰렁하다. 그 건물들 꼭 철거해야 했나”며 투덜거렸다.

지저분하고 낙후된 건물, 도로 환경을 말끔하게 정비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고층 빌딩, 아파트 일색의 주거문화가 삶의 질의 척도는 아니다. 일상의 다양한 풍경이 만들어내는 소소한 공간의 다양성이 도시의 문화를 형성한다. 많은 대전시민들은 기억할 것이다. 레코드 가게, 칼국수집, 수선집, 옷가게, 단추가게 등 올망졸망한 가게가 빼곡히 들어찬 홍명상가는 시민들의 만남의 장소였다. 중앙데파트 뒷골목도 추억이 새롭다. 신문사에 갓 입사한 그해 12월, 동기들과 퇴근해 신도극장으로 '원초적 본능'을 보러갔을 때의 놀라움. 극장 안은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나면 늘 중앙시장 먹자골목에서 당면 넣은 떡볶이 먹으며 침 튀기며 영화얘기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장소란 그런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오래 전의 추억을 만나게 되는 곳. 과거 속에서 현재의 나를 확인하는 현장이다. 오래된 가옥, 세월에 찌든 여관, 좁다란 골목도 우리 삶의 통로이자 값진 유산이다. 우리는 일부 지자체장의 무지와 표를 얻기위한 수단으로 인해 역사성 있는 건물이 헐리는 것을 많이 봐왔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서울시 청사 철거를 봐왔지 않은가. 허물고 재개발하고 새로 지어진 건물은 욕망과 자기과시만이 있는 천박한 물체일 뿐이다.

불현듯 내 심미안이 근시안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목척교도 에펠탑처럼 후에 대전의, 원도심의 랜드마크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에펠탑도 처음엔 '철골 괴물'이란 악평에 시달렸지만 지금은 시대와 역사의 상징으로 세계인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목척교도 훗날 다른 예술에 영감을 불어넣는 새시대를 창조한 시대의 걸작품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애써 자위해본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5.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1.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2. 더젠병원, 한빛고 야구부에 100만 원 장학금 전달
  3. 한화이글스, 라이언 와이스 재계약 체결
  4.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5.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