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난순 교열부장 |
우리가 볼 수 있는 오늘날의 다리들은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지만 우리 조상들이 만든 다리들은 운치가 있었다. 몇 년전 여행길에 버스를 타고 지나던 중 충북 진천의 농다리를 보았다. 그 다리가 너무 아름다워 버스가 모퉁이를 돌아 안보일 때까지 고개를 빼고 보며 감탄했다. 고려시대에 축조됐다는 농다리는 돌을 쌓아 교각을 만들고 그 위에 장대석을 올려 상판으로 삼아, 돌로 된 다리의 원형을 보여준다. 물소리, 숲속의 바람과 더불어 돌다리를 건너는 흥겨움이 절로 느껴져 언젠가 꼭 저 다리를 건너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세계의 많은 도시는 아름다운 다리를 간직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베키오 다리, 프라하의 카렐 다리,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는 도시와 강, 바다, 다리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 예술품으로 평가받는다. 아! 영화 속의 비련의 다리도 있다. '애수'에서 여주인공 비비안 리는 안개 낀 다리위에서 달리는 트럭에 몸을 던진다. '워털루' 다리에서. 자욱한 안개 속의 희미한 가스등의 불빛, 그리고 다리 난간에 서있는 비비안 리의 슬픔 가득한 눈빛. '워털루' 다리는 1차대전 막바지의 남녀의 사랑과 슬픔의 정취가 흠뻑 묻어나는 스토리 풍부한 런던의 다리가 됐다.
다시 목척교로 돌아가보자. 목척교는 대전천생태하천 복원차원에서 2010년 설치됐다. 대전천을 정비하고 산책길도 조성됐다. 대신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중앙데파트는 대전 최초의 백화점으로 대전 상권의 중심이자 상징이었다. 그만큼 대전의 역사성 있는 건축물이었다. 대전천 주변의 한 상인은 “(목척교 조형물 설치는) 한마디로 돈지랄 한거다. 홍명상가, 중앙데파트 있을 땐 사람들이 웬만큼 왔다갔다 해서 왁자지껄했다. 지금은 썰렁하다. 그 건물들 꼭 철거해야 했나”며 투덜거렸다.
지저분하고 낙후된 건물, 도로 환경을 말끔하게 정비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고층 빌딩, 아파트 일색의 주거문화가 삶의 질의 척도는 아니다. 일상의 다양한 풍경이 만들어내는 소소한 공간의 다양성이 도시의 문화를 형성한다. 많은 대전시민들은 기억할 것이다. 레코드 가게, 칼국수집, 수선집, 옷가게, 단추가게 등 올망졸망한 가게가 빼곡히 들어찬 홍명상가는 시민들의 만남의 장소였다. 중앙데파트 뒷골목도 추억이 새롭다. 신문사에 갓 입사한 그해 12월, 동기들과 퇴근해 신도극장으로 '원초적 본능'을 보러갔을 때의 놀라움. 극장 안은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나면 늘 중앙시장 먹자골목에서 당면 넣은 떡볶이 먹으며 침 튀기며 영화얘기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장소란 그런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오래 전의 추억을 만나게 되는 곳. 과거 속에서 현재의 나를 확인하는 현장이다. 오래된 가옥, 세월에 찌든 여관, 좁다란 골목도 우리 삶의 통로이자 값진 유산이다. 우리는 일부 지자체장의 무지와 표를 얻기위한 수단으로 인해 역사성 있는 건물이 헐리는 것을 많이 봐왔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서울시 청사 철거를 봐왔지 않은가. 허물고 재개발하고 새로 지어진 건물은 욕망과 자기과시만이 있는 천박한 물체일 뿐이다.
불현듯 내 심미안이 근시안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목척교도 에펠탑처럼 후에 대전의, 원도심의 랜드마크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에펠탑도 처음엔 '철골 괴물'이란 악평에 시달렸지만 지금은 시대와 역사의 상징으로 세계인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목척교도 훗날 다른 예술에 영감을 불어넣는 새시대를 창조한 시대의 걸작품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애써 자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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