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혀있는 곡운 김수증의 암각문자. |
대전에 곡운이 쓴 애각과 편액 등이 있는데, 제월당이 살던 후곡에 '浣溪', 판암동에 '三韓精氣 百世淸風'이 새겨진 쌍청당 애각과 '霽月堂, 玉吾齋, 玉溜閣' 등 편액이 있다.
대전에는 문화재가 드문 편인데, 조선을 대표하는 팔분서체 대가인 곡운 김수증 선생의 글씨 가운데 자연석에 각자를 해놓은 것은 더욱 희소하다. 그중에 하나가 대전에 제월당 뒤에 있었는데 계족산 도로공사를 하느라고 묻혔다고 하니 안타깝다.
대전 시민으로서 답답한 마음뿐이다. 훌륭한 문화재를 땅속에 묻어놓고 밟고 다닌다는 것 자체가 문화적 수치다. 귀중한 문화재를 발로 밟고 다니는 일이 문화시민으로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제월당 밑에 살고 있는 제월당 후손 송인화씨의 증언에 의하면 보호수 옆에 있었다고 하는데, 그 주변에 제월당의 종숙부인 안소당 댁이 살았고 얼마 전까지도 생존해 계셨다. 안소당 댁을 우리들은 완계댁이라 불렀고 지금도 은송가에서는 그 집안을 완계댁이라 부르고 있다. 식당 주인 박현수씨 증언에 의하면 확언하건데 외지로 반출되지는 않았고 도로공사를 하느라고 아스팔트 밑에 그대로 쓸어 묻었다고 한다.
능호관 이인상의 동춘당 셋째 손자 송병원(1651~1690) 묘 망주석에 쓰여진 각자 '篆書'가 대전역사박물관 앞에 있는데 이 망주석도 만사가 쓰여 있는 것은 전국적으로도 드물다. 이 망주석도 1995년에 금산군 수당리 송병원묘 이장 후 굴착기로 세 동강이 내서 묻었던 것을 당시 향토사료관 학예사와 협조해 필자가 후손과 협력해 찾아 복원해 놓은 것이다.
송성빈·유성생명과학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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