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필영 공주대 경제통상학부 명예교수 |
2014학년도 대입 수능시험에 등장한 사자성어(四字成語)다. 국어영역 37번 문제 '보기'로 제시된 거다. 수능시험을 시작으로 사자성어는 꿈틀댄다. 연말연시엔 봇물을 이룬다. 정치권과 지식층에선 마구 토해낸다.
'집사광익(集思廣益)', '현량자고(懸梁刺股)', '입교신도(立敎新都)'. 무슨 뜻일까. 어렵다. 알 수 없다. 올해 지향할 시정 목표와 교육 방향을 밝힌 거라나. 대전시장, 대전교육감, 충남교육감이 내건 사자성어다. 송구영신의 다짐과 바람을 함축하는 말이리라. '제구포신(除舊布新)!' 이건 또 무슨 뜻인가? 교수신문이 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다. 뱀의 해, 2013년 소망이라던가! 춘추좌전에 나오는 말이란다.
혼란스럽다. 피곤하다. 뜻이 생동감 있게 와 닿지 않는다. 무식해서일까. 스스로 채찍질 해 본다. 그냥 지나쳐 버리기엔 심사가 뒤꼬인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뜻 아는 국민 얼마나 될까.
어려운 문자를 꼭 써야 하나. 고매한 사자성어를 쏟아야 권위가 서는 건가. 국어사전에도 없는 낱말을 써야 유식한 건가. 국민이 몰라야 으쓱한 건가. 열불 솟구친다. 지식층이 쓴 글을 보라. 전문 용어가 넘실댄다. 어렵다. 이해 안 된다. 골머리 아프다. 시험 공부하듯 읽어도 뜻이 안 통한다. 아니, 대여섯 줄 읽다가 그냥 덮기 일쑤다. 글 읽는데 인내심 부족일까. 사자성어가 뭐길래…!
사자성어의 근원은 시경(詩經)이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이다. 고대 중국 주(周)나라 초부터 전국(戰國)시대 중반까지 천 년 정도 걸쳐 전해온 시(詩) 묶음집이다. 본디 3000여 편이 있었으나, 중복된 것 삭제되고 자질구레한 시는 퇴출되어 300여 편만 전해온다. 시경에 있는 시들은 비유가 많다. 숨은 뜻으로 세상사를 풍자한다. 많은 격언과 금언이 거기서 나왔다. 시경에 실린 시는 대부분 넉 자로 되어 있다. 세 글자로 된 것도 있고, 많게는 아홉 글자도 있으나, 네 글자 시가 주종을 이룬다.
네 글자에는 리듬과 운율이 있어서일까. 사람의 호흡과 맥박은 네 박자와 조화롭기 때문일까. 시경 이후 3000여 년 동안 사자성어는 문장론의 전통으로 자리매김 한다. 영어 구문론도 마찬가지다. 주어 술어 목적어 보어 넷으로 이루어야 완전성을 갖춘다. 온 세계가 사계(四界)요, 인생의 온갖 고통도 사고(四苦)요, 일 년도 사계(四季)로 되어 있고, 계산도 사칙(四則-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으로 이루어진다. '사(四)'는 온전함이요 완전이다. 사자성어 탄생도 이러하리라.
사자성어는 고사(古事)에 뿌리를 둔다. 옛 이야기를 모르면 그 뜻을 깨우치기 어렵다. 젊은 층은 더 어렵게 느낀다. 연말연시에는 유난히 사자성어가 많이 등장한다. 신조어도 끼어든다. 말은 느낌의 소리요 글은 생각의 그릇이다. 배우는 자, 문자를 탓하지 말라고 했다. “한 옥의 티는 갈 수 있지만, 말ㆍ글의 티는 어찌할 수 없다.” 사기열전에 있는 말이다. 다산 선생도 한 수 지도하지 않던가! “학문이란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어려운 것을 쉽게 풀이하는 절차다. 깊이 들어가고 얕게 나와야 한다(深入賤出)”라고….
말 좀 바르게 하자. 글 좀 쉽게 쓰자. 배움 많은 자, 높으신 분이여! 왜 어려운 말ㆍ글을 토해내는가. 어려운 글귀를 쏟아야 지식인인가. 난해한 글이라야 권위가 서는 건가. 쉬운 말로 하면 어디가 덧나는가.
'창조경제'도 사자성어…! 뜻이 뭔가? 아는 국민 얼마나 될까. 1%도 안 되리라. 뜬구름 잡기다. 헷갈린다. 어지럽다. 사회가 혼란스러울 땐 징조가 있다. 말부터 모호하다. 요즘 우리 사회는 꽉 막혔다. 일방통행이다. 소통은커녕 불통이다. 먹통이다. 말이 안 되는 말이 판친다. 글다운 글이 별로 없다. 먼저 바로잡아야 할 게 있다. 말과 글이다. 바른말 하기다. 쉬운 글쓰기다. 그것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요, 소통의 통로다. 또 한해가 저문다. 뜻 모를 한자어가 넘실대리라. 사자성어가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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