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충식 논설실장 |
충청도가 지금 들썩인다. 태안화력 9, 10호기 증설로 송전탑 추가 설치가 계획된 서산 팔봉면에, 송전탑에 마을을 포위당한 해 뜨고 지는 왜목마을에도 심상찮은 바람이 불어온다. 당진 신평면 구간은 해상 송전탑이 잠깐 거론됐지만 해양생태계 파괴와 어업 지장을 걱정한 주민 반대가 컸다. 이래저래 없던 일이 됐다. 모델이 된 시화호 해상 송전탑은 바지선 위 레미콘공장 등 듣도 보도 못한 공법이 동원된 지독한 난공사였지만 “주민과 환경단체 설득보다는 쉬웠다”고 한다. 이제 그마저 철거하라 외치는 판이다.
송전탑 해법은 이렇게 지독하게 어렵다. 누구는 '거미줄 전깃줄'에서 도돌이표, 쉼표 달린 악보를 읽고 가고 누구는 철탑 사이 일출의 장엄함을 카메라에 담는다. 남의 염병(장티푸스)은 내 고뿔만 못한 법이라던가. 이 쟁점을 따라가면 대단지 발전소 위주의 중앙집중형 전원(電源)이라는 구조에 부딪힌다. 충남 276%, 서울 3%인 전력자급률(수도권 전체는 56.7%)로 설명은 싱겁게 끝난다. 그런데 당진, 태안, 보령의 발전소에서 수도권을 잇는 원거리 송전탑 증설이 필요해 생긴 갈등은 결코 싱겁지 않다.
그 본질이 전력 공급지와 수요지, 공급지역과 부하지역 간 분배상의 환경 불평등이기에 더 그렇다. 제일 좋은 열쇠는 내 고장 전기는 내 고장에서 생산하는 분산형(지방자치형?) 전원에 있다. 발등의 불은 물론 송전탑이다. 충남 1.3%, 충북 2.4%인 지중화율을 높이기도 말처럼 쉽지 않다. 송전선 갈등을 빚은 창원 월영동에서 2일 행정중재로 '지중화 안'에 도장 찍은 보기 드문 선례가 있긴 하다. “(지중화는) 비용적인 측면에서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에 현재로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구요….” 한전 대전충남개발처 관계자가 언급한 부분 또한 '현실'이다.
이것은 지중화의 딜레마다. 이대로 가면 송전설비가 꽉 차 발전소를 못 짓는 사태가 올 수 있다. 연료전지, 열병합발전, 소규모 가스터빈, 태양열 등 신재생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까지 어려울 땐 세 가지 옵션이 얽힌 트릴레마가 되고 만다. 실제 33년 묵은 서산·태안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갈등은 초임기자 시절에도 기사화됐다. 새만금 풍력시범단지는 서천에서 반대한다. 공공갈등 조정 장치가 허술하다 보니 주민, 한전, 경찰만 사사건건 고생이다. “한전과 공사 반대 주민 양쪽이 대화에 임하라”며 하나마나한 권고안을 내민 국회도 딱하긴 매일반이다.
1 더하기 1이 0이 되고 10이나 -10도 되는 갈등 리스트에는 고르디아스 매듭처럼 단칼로 처리할 것도, 살살 실마리를 풀 것도 있다. 경기개발연구원 고재경 연구위원은 “위험과 비용은 특정 지역에 집중되는 반면, 수도권 지역은 비용 부담 없이 서비스 혜택을 누려 지역 간 비용과 편익 불균형이 발생한다”며 “전력 수요가 있는 곳에 발전소를 짓는 분산형 발전 정책”을 제안한다. 근착 충남리포트 87호(이인희 연구위원)도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 전환'을 답으로 예시했다. 분산형 전원, 다양한 툴(실천수단)을 지방정부가 갖는 에너지 분권화는 고양이 코딱지 같은 소리로 들리겠지만 에너지 수익과 불평등의 꼭대기에 있는 송전탑 갈등의 궁극적인 솔루션임은 분명하다.
이 갈등을 풀기 전, 바나나('어디에든 아무 것도 짓지 마라')와 님비('내 뒷마당에라도 안 된다')의 생생한 살풍경으로 비칠 송전탑이 내 집과 동네를 에워쌌다는 극단의 가정을 한번 적용해 보자. 공익을 위해 유무형의 환경권, 지가 하락 등 재산권 침해, 공동체적 삶에 관련된 불편과 고통을 담담히 인내할 자신 있겠는가. 보상을 노린 생짜 욕심만일까. 우리는 그 많은 송전탑 덕에 적정 난방온도(18~20)를 무시하며 편하게 전기를 쓴다. '있는 그대로'를 보며 갈등 중재와 타협점 찾기에 나설 때다. 당진화력~북당진 신규 송전선로, 태안~신당진 송전선로 교체 등에 맞대응할 충남송전탑대책위원회가 지난주 공식 출범했다. 충남을 지나는 1407㎞의 송전선로, 4142개의 철탑 어느 지점에서든 '보고 싶은 대로'만 보면 제2의 밀양 사태 재연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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