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국원 침례신학대 총장 |
생각해 보면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에 크리스마스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고맙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인류의 구세주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예배, 곧 '그리스도 미사'(Christ mass)가 크리스마스이기 때문에 우리 교인들은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힘차게 찬송하며 신앙의 즐거움을 나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크리스마스는 관심과 관용을 나누는 훈훈한 명절이다. 가끔은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이 산타 할아버지인 것처럼 오해되어 선물을 주고받는 '산타 마스'로 변질돼 안타까움도 없지 않다. 그러나 상업주의적 왜곡과 과장에도 불구하고, 종교와 국적을 떠나 감사와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만드는 크리스마스는 역시 한 해의 마지막 달에 가장 어울리는 화평의 축제다.
서양 사람들이 즐겨 쓰는 '크리스마스 정신'(Christmas Spirit)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원수되었던 사람들이 화해하며, 가난한 이들과 물질을 나누고, 절망하는 영혼에게 희망을 전하는 마음이 크리스마스 정신이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찬가(讚歌, Magnificat)에 나오는 가사처럼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누가 1:52)하는 마음이다. “교만한 자들, 권세있는 자들, 가진 자들”이 겸손하게 되어서 소외된 이웃들과 대화를 나누고 음식과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되는 예수의 정신이 바로 크리스마스 스피리트다.
12월은 크리스마스가 있어 감사하고, 크리스마스 정신이 살아있어 아름다운 달이다. 구세군의 자선냄비 종소리, 빨간 사랑의 열매, 크리스마스 씰 등이 세밑의 풍경을 훈훈하게 한다. 날씨는 매섭고 삶은 여전히 고달프지만 이웃을 위해 작은 정성이라도 나누어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사람과 사랑의 아름다움을 일깨워 준다. 한 마디로 대동화평(大同和平)의 염원이 곧 크리스마스 정신의 핵심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을 고대했던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가 오시면 '골짜기마다 돋워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되는'(이사야 40:4) 대동(大同)의 세상이 찾아오리라고 예언했고, 천사들이 유독 가난한 목자들에게 아기 예수의 탄생 소식을 전했다고 기록했던 신약의 누가 선생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누가 2:14)라며 메시아 탄생이 약속하는 화평의 시대를 노래했다.
12월이 되고 크리스마스는 하루하루 가까워져 오지만 우리 사회에 크리스마스 정신은 아직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적어도 신문 1면과 TV 톱뉴스만으로 판단한다면 2013년 대한민국 사회는 불신, 반목, 대결, 비방, 증오의 악순환 속에서 헤어날 수 없는 치료불가능한 환자 같아 보인다. 남북대화는 경색되고, 남남 갈등은 증폭되고, 국회는 휴업하고, 정치는 실종되고 있다. '오랑캐 땅에 꽃이 피지 않으니 봄은 왔어도 봄이 봄 같지 않도다(胡地無花草 春來春似春)'라고 옛 시인이 노래했는데, 여의도에 대화가 단절되니 12월이 되어도 크리스마스 정신은커녕 서로 제대로 인사조차도 나눌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랏일을 감당하는 훌륭한 분들 모두가 12월, 크리스마스 계절에는 한 번쯤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에게 져주는 것도 크리스마스 정신을 실천하는 멋진 일이 아닐까? 그 분들이 손을 잡고 나라를 위해 한마음이 되자며 웃는 사진이 실린다면, 그것이 국민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자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귀한 예물이 될 것이다. 단언컨대 크리스마스와 크리스마스 정신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누가 2:10)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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