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덕재 시인·대전시인터넷방송 PD |
정규 시즌 가운데 단 한 경기만 보지 못했을 뿐이다. 일반 관중석이 아닌 4층 미디어석에서 지켜보기 때문에 경기 흐름을 파악하기가 수월했다. 실질적인 강등제가 시행된 올 시즌은 막바지까지 피 말리는 경쟁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승부의 세계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축구장 안팎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꼼꼼히 살펴보면 단순한 경기 이상의 의미와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몇 시간 전부터 운동장 밖에선 좌판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 경기를 준비하는 구단 직원들은 동분서주 관객맞이 준비를 한다. 경기 시작 10분 전, 심판진과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입장한다. 매 경기 선수들은 어린 아이들이나 청소년들과 함께 들어온다. 프로선수의 손을 잡고 들어오는 아이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들을 가리켜 플레이어 에스코트라고 하는데, '평화와 화합의 전령사'라는 함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축구 이상의 정신을 알리는 차원에서 이런 세리머니가 매번 열렸다. 월드컵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경기가 시작되면 선수들은 있는 힘을 다해 뛰고, 코칭 스태프들은 목이 쉬도록 소리치며 작전을 지시한다. 공이 밖으로 나가면 볼보이를 하는 중고등학교 축구부원들은 연신 공을 던져준다.
관중석에서는 서포터스가 북을 치며 노래를 하고 구호를 외친다. 하프타임에는 교체선수들이 나와 몸을 풀고, 이벤트를 진행하는 사람들은 흥미있는 놀이로 분위기를 북돋운다. 또한 깊게 파인 그라운드의 잔디를 덮어주는 사람들은 분주하게 손을 놀린다. 관객들은 컵라면이나 과자를 먹으며 잠깐의 휴식을 즐긴다. 보는 이들은 여유롭지만 승강전쟁에 진땀을 흘리는 선수단과 구단관계자들의 표정은 굳어있다.
축구에 열광하는 대표적인 나라는 잉글랜드다. 지난 4월 17일 카디프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경기는 프리미어 리그의 역사를 새롭게 쓴 날로 기억되고 있다. 카디프시티가 반세기 만에 1부 리그로 승격이 됐기 때문이다. 1899년 창단한 카디프시티는 1961-1962 시즌에서 2부 리그로 강등됐다. 이후 51년 동안 1부 리그를 밟지 못했다. 이 팀은 한 때 4부 리그로 추락한 경험을 갖고 있기도 하다.
1부 리그 팀이 2부 리그로 내려가는 제도가 우리에게는 낯선 일이다. 그것이 축구 인프라와 팬 문화 그리고 구단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상식적인 판단으로 보면 상대적으로 경기력이 떨어지는 경기를 봐야하는 아쉬움이 있을테고, 스타 선수들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 것이다. 뿐만 아니라 축구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줄어들지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축구를 승부의 경쟁으로만 여기지 않고 함께 공유하는 문화로 바라보면, 스포츠를 즐기는 정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축구저널리스트 니시베 겐지가 쓴 축구전술 책을 보면 시스템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한다. 그는 축구의 시스템과 포메이션 어느 것이 옳고 틀렸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수비와 공격의 균형, 변형의 매카니즘, 수적 우위를 점하는 방법 등은 단순한 축구 전술을 뛰어넘는다. 시간과 공간의 미학을 창조하는 축구는 인간관계의 상관성을 보여주고, 협업의 필요성을 가르친다. 더불어 다양한 리더십의 유형을 알려주기도 한다.
우리가 지역 연고팀인 대전시티즌을 응원하고 경기장을 찾는 것은, 사회를 유기적으로 이해하고, 조직운영의 모델을 배우기 위해서라고 생각하자. 경기장을 찾는 것은 전술로 투영되는 복잡한 세계를 즐기기 위함이며, 스포츠가 전하는 교육을 체감하기 위해서라고 인식을 바꿔보자. 그리고 어린 플레이 에스코트들이 창의성을 가진 인재로 자라나 지역사회의 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자. 대전시티즌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51년 동안 2부 리그에 있던 카디프시티를 그 지역 주민들이 버리지 않았듯이, 우리는 올 시즌 시티즌이 보여준 막바지 열정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내년에도 경기장을 찾아 축구 이상의 축구를 만끽하면 되는 것이다. 승부의 집착을 벗어날 때 축구는 스포츠를 넘어 위대한 정신이 된다. 2014년, 대전시티즌이 써나갈 새로운 드라마의 시작을 즐겁게 기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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