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인 지휘자, 남가주대 합창지휘 박사 |
지휘자는 오늘 연주한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합창의 현재와 미래를 바람직하게 제시하였다고 여겨진다.
객원 지휘는 통상 합창단과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출 수 없기에 여러 가지 부족한 면을 보이게 된다. 그러나 이번 연주는 그런 면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지휘자와 합창단이 노련하고 원숙하게 오래 손발을 맞춘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간혹 합창단이 음정이 안 맞고 흔들리는 등 문제들이 있었지만 이것은 어느 연주회에서나 접하게 되는 소소한 문제들이다. 중요한 점은 지휘자와 합창단이 서로 각각이 지닌 장점을 최대한 살려내 시너지 효과를 얻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우선 지휘자의 탁월한 선택들이 작용했다고 본다. 첫째. 곡 선택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을 분명히 하는 곡의 배치를 보여줬다. 곡들 사이의 조성은 증4도나 단2도 하행 등 한곡에서 다음 곡으로 연결 될 때 어색한 음정관계를 배치하지 않았다. 또 '봄'은 옴니버스의 곡으로 '여름'은 흥겨움, 서정적, 재미있는 곡 순으로 넣어 다양함을 추구했으며 '가을'은 서정적인 곡들로 '겨울'은 눈과 희망의 메세지를 '다시 봄'은 자연의 예찬을 담은 노래를 선보이며 선곡의 탁월함을 보였다.
둘째. 음악의 흐름에서 지휘자는 작은 그림과 큰 그림을 동시에 보며, 표현하는 능력을 발휘했다. 여기에 합창단 화음의 섬세함이 보태져 관객을 몰입하게하고, 합창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결과를 낳았다. 다만 남자 파트의 소리가 가벼웠다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곡을 표현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셋째, 가사의 전달력이다. 지휘자와 합창단은 이번 무대에서 단어의 강세와 운율을 살린 무대로 듣는 사람에게 가사가 명확히 전달하는 효과를 보여줬다.
이같은 연주 방법은 대한민국의 모든 합창단이 지향해야 하며, 모범 답안과 같은 연주회였다고 생각된다. 이번 연주에서 이상훈 지휘자와 대전시립합창단은 삶에 지치고 힘든 많은 이들을 노래로 위로하고 행복을 느끼게 했다. 특히 서정적인 그리움, 추억, 외로움을 담아낸 '가을'의 노래는 이 연주회의 백미였다.
또한 앙코르곡까지 연주의 연장으로 엮어낸 지휘자의 솜씨가 빛났다. 앵콜곡 조혜영의 '바람부는 날에는'과 청중과 다같이 부른 '남촌'은 청중으로 하여금 잘 만들어진 한편의 드라마를 보게 하는 듯했다.
이상훈 지휘자의 연주를 끌어 나가는 힘과 대전시립합창단의 저력이 만나 빚어낸 아름다운 무대로 끝까지 감동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이날 연주회는 합창을 선보이기 이전 각 계절의 정취를 담은 시 낭송을 통한 분위기 조성을 하였으며 또 적절하게 어울리는 영상을 보태 연주회를 풍성하게 진행했다.
아쉬웠던 것은 시각적 정보가 강한 영상이 음악에 대한 몰입을 간혹 방해했다는 점이다. 고무적인 것은 대전시민의 관객의식이었다. 연주 내내 휴대전화의 울림이 전혀 없었으며, 음악에 집중하며, 박수치는 모습은 분명 음악 선진국의 청중의 모습이었다. 문화, 예술의 도시인 대전의 수준 높은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연주를 들으면서 합창단이 노래한 '나비에게'의 가사가 필자의 마음에 와 닿았다.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이 연주는 필자가 '첫눈'에 대한 풋풋함, 싱그러움, 그리움, 추억 감동, 눈물을 다시 마음 깊이 새겨보는 '힐링'의 연주였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첫눈'을 그리워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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