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 형식을 빌린 일련의 정치행동은 종교의 본분은 그만두고 정의의 이름을 업은 교만과 독선에 다름 아니다. 양심과 신앙의 자유 영역마저 저만큼 내팽개쳐졌다. 무고한 희생을 부른 군사 도발의 옹호는 도저히 인간 존엄과 양심의 표현으로 봐주기 힘들다. 다수 국민이 공감하는 공동선과 벌어진 거리가 너무 멀다.
일상과 사회생활의 영역에서 종교가 정치적인 행위와 무관치 않음을 인정한다. 그렇다 해도 그 범위와 수준이 금도를 넘어섰다. 정치 참여가 의무인지를 떠나 현실 정치구조에 이렇게 직접 개입해야 온당한지 가슴에 손 얹고 성찰해보길 권한다.
이것은 정치가 제 구실을 다 못한 책임과는 별개의 문제다. 교회 내부적으로는 교회적 친교를 분열시키는 행동일 것이다. 더도 덜도 아닌 종교활동과 교리, 정교 분리라는 헌법적 원칙까지 깬 오만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다원화 사회에서 화해와 용서로 정신적 안보의 축에 서는 것이 오히려 이럴 때 종교의 할 일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을 정당화하는 발언은 정의나 종교 모두를 겨냥한 중대한 도전이고 모독이다. 엄혹한 권위주의 시절 일부 따놓은 명예까지 일시에 얼룩지게 했다. 사제단이 제도정치를 향해 외치는 정의란 무엇이며 또 누구를 위한 정의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 종교만큼 탁월한 정치 수단이 없을지 모른다. 남북 및 남남갈등, 인권과 불평등에 때로는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건 방식부터 완전히 그르쳤다. 사제단에 이어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등이 시국선언을 예고해 보혁 진영 논리에 휩쓸릴 조짐이다. 종교와 정치가 지금 전형적으로 잘못 만나는 것이다.
물론 정의구현사제단이 천주교 자체나 전 종교계를 대표하는 건 아니지만 어서 합리적인 종교의 자리를 되찾길 촉구한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가톨릭’이 추구하는 최소한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게 사제 된 도리다. 교회와 정치공동체를 일시 혼동한 사제단은 교회와 사회가 요구하는 사제의 참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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