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동혁 대전지방법원 판사 |
5년이 지나 서산에 다시 온 지금은 그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일을 좀 못하면 어떤가, 그리고 술 좀 못하면 어떤가. 나이가 든 탓일까? 예전에 모셨던 부장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형사합의 사건을 하면서 나는 늘 엄벌을 주장하고 그 분은 늘 선처의 여지가 없는지도 살피자고 나를 누그러뜨리셨다. 그러면서 내가 쉽게 수긍하지 못하면 항상 그 말씀을 하셨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관대해진다는 것이다.'
이제 내가 그 분의 나이가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관대해진다는 것은 단순히 세상과 타협한다는 의미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비겁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아무런 열정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일'만 보이던 것에서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죄는 밉지만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누가 뭐라 해도 나 만은 나의 길을 갈 것 같다가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한계를 가진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법대 위에 앉은 나와 내 앞에 앉아 있는 피고인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상황이 달랐을 뿐 내가 피고인의 처지에 있었다면 나도 똑같은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피고인의 처지'라는 것이 피고인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 장애, 질병, 부모의 이혼 등 피고인이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처지들과 그들의 행동이 무관하지 않다. 때로는 그들의 행동에 대해 사회 전체가 책임져야 하는 경우도 많다. 피고인들을 대하다 보면 때로는 내가 요행히 저 피고인과 같은 처지에 있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고 여겨질 때가 많다.
형벌은 또 어떤가? 가족 중에 누군가 단 며칠만 구속되어 있어도 온 집안이 난리가 난다. 무슨 수를 동원해서라도 빼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모든 자유가 박탈된 상태에서 교도소 생활을 한다는 것, 교도소에서 지내야 하는 하루하루의 무게는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그 이상일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징역 5년, 7년을 너무 쉽게 이야기 한다. 때로는 솜방망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그렇게 법원을 비판하고 판결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탓할 생각은 없다. 판사인 나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요즘 '응답하라 1994'라는 드라마가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나도 애청자 중의 한 사람이다. 구수한 사투리도 재미있지만 1994년은 내가 공무원으로 처음 발령을 받은 해이기도 해서 왠지 자꾸 마음이 간다. 사표를 던지고 다시 판사가 된 것이 2004년이니까 올해로 10년이 되어간다. 늘 처음처럼 열정이 식지 않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그 열정은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일을 끌어안은 열정에서 사람을 끌어안은 열정으로. 그리고 앞으로는 그 열정이 또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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