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태 법무법인 저스티스 대표변호사 |
두 번째의 이론은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 정의라는 이론이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선택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인식되고 있고 인정되고 있는 권리로서의 자유를 의미한다는 이론과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행할 법한' 가언적 선택(자유주의적 평등주의:롤즈)으로서의 자유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이론이 있다. 선택의 자유는 분명 인간의 기본적 가치이며 권리로서 존중돼야 한다는 의미에서 정당한 이론이긴 하다. 하지만 선택이란 결국 어떠한 가치관이 개입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자유의 존중이란 결정 과정으로서의 의미가 있는 것일 뿐이며 선택에 따른 그 결과에 대해서는 개인의 책임과 정의로운지의 판단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선택의 자유라는 결국 가치관의 정당성 문제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이클 샌델은 결론적으로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공동선'이라는 말로 귀착되었는데 여기에서 '정의로운 사회는 좋은 삶을 다 같이 고민'한다는 것이 전제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그래서 인간의 도덕성이야말로 정의의 기준이 돼야 하며 이에 따라 당연히 공동선의 내용도 규정돼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사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정의로운 사회란 좋은 삶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라는 표현으로 보인다. 이것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법률이라는 것이 한낱 공염불이요, 허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정의에 대한 열정이 없다면, 함께 좋은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희망도 미래도 없음은 분명하다. 단지 정치권력을 잡은 소수의 이익집단이나 소수재벌들에 의해 만들어진 법률, 즉 정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허울 좋은 옷으로 갈아입은 부정의가 이 세상에 판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은 정의로운가라는 질문에 대해 유일한 해답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자신이 정의에 대한 열정으로 법에 정의로움이 반영되도록 노력한다면 법은 정의로워질 것이지만 반대로 정의에 무관심해 소수의 정치 권력자들이나 재벌들에게 이를 맡긴다면 법은 그들만을 위한 부정의가 되어 우리들에게 억압과 피해라는 칼을 들이대는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법은 정의롭다기 보다는 정의로워져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며 그래서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계속>
법무법인 저스티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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