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의 '문화재'가 사라지고 있다

장래의 '문화재'가 사라지고 있다

유성 탑립동은 끝내 '탑'없는 동네로 대전 마지막 초가집엔 함석지붕 덮여

  • 승인 2013-11-21 14:25
  • 신문게재 2013-11-22 10면
  • 임헌기 객원기자임헌기 객원기자
● [객원기자]

▲ 용두동 영렬탑
▲ 용두동 영렬탑
갑자기 추워진 날씨가 아니라 자연의 순리에 따른 추위인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차갑고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면 목조건물은 수축으로 인해 틈새간격이 늘어나고 화재발생까지 염려가 된다. 그 어떤 이유로도 훼손된 문화재의 완벽한 복원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대전 교사양성의 흔적 '잿더미로'=2년 전 새벽에 발생한 화재로 잿더미가 된 옛 사범학교 교장사택(대전 중구 선화동)은 원인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로 우리 곁을 떠났다. 초기 현대교육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던 교사양성의 흔적을 대전에서는 모두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돌탑이 세 개나 있었던 유성구 탑립동은 테크노밸리 조성 과정에서 탑이 없는 탑립동으로 변모했다. 마지막 정월대보름에 올린 치성물은 중장비로 반듯하게 만든 대지를 며칠 바라보다가 결국 흙더미에 묻히고 이내 사라졌다. 그 과정을 내 카메라는 짧은 비명과 함께 2003년 8월 9일 남겼지만 더 이상 눈으로 볼 수는 없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사범학교 교장사택은 사고였고 탑립동 돌탑은 무관심 또는 인위적 훼손 사례이다. 그리고 시민들 기억 속에 이미 잊힌 상태다.

▲ 매노동 황골 초가집
▲ 매노동 황골 초가집
매노동 황골의 옛모습 사라져=작년 여름날, 점심식사까지 거르는 짬을 내어 대전의 남서쪽 끝자락 마을 매노동 황골을 찾았다. 대전에 남은 마지막 초가집 풍경이 보고 싶어 찾았지만 지붕은 이미 하늘색 함석으로 교체되어 있었다. 부엌은 아낙의 손길이 닿은 지 오래 되었고 살림은 옆에 새로 지은 건물로 옮겨진 상태였다. 장독대와 헛간, 흙벽은 모두 원래의 상태이지만 지붕의 재료가 바뀐 것이다. 이는 현대 영농방법이 손이 아닌 기계로 탈곡을 하므로 이엉을 엮는데 문제가 있는데다가 함께 손을 맞추어 지붕을 얹을 경험자들이 사라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선화동 도청 뒤편에 우뚝 서있던 영렬탑이 최근 헐렸다. 주택개발사업 계획으로 이미 오래 전 보문산에 건립된 보훈공원으로 위패가 이전된 상태였지만 휑한 모습에 공원조성을 위한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 원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이 지역에서 순직한 선조들을 모시는 충렬탑으로 조성되다가 해방으로 중단되었으며 한국전쟁 후 이 지역에서 목숨을 잃은 군인과 경찰의 위패를 모신 영렬탑으로 완성된 사연이 있는 곳이다. 보문산으로 위패가 옮겨졌다는 소식을 전한 이후에도 일부 위패는 영렬탑에 그대로 있기도 했다.

헐린 영렬탑 자리에 공원 조성 계획=문제는 공원을 만들 계획이 있었다면 왜 굳이 보문산에 또 공원을 만들어 이전해야 했을까? 그냥 두었으면 공원이 되었을 것을. 혹자들은 일본의 손길이 닿은 자리가 우리 군경의 위패를 모시는 장소로는 부적당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일본인들의 그 근본정신은 우리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곳을 가든지 선조들을 생각하는 그들의 정신과 행동은, 그 어렵고 돈이 많이 드는 경남 통영에 바다 밑으로 터널을 뚫었다. 유속이 빠른 남해에서 임진왜란 당시 조선수군에 수많은 희생을 치렀던 그들은 차마 선조들의 시신이 잠긴 바다 위를 건너갈 수 없다는 생각으로 해저터널을 만든 것이다. 과연 같은 공원에 모시는 결과라면 모두가 쉽게 바라보며 잊지 않게 하며 접근이 쉬운 곳을 택하는 것이 옳은지, 보이지도 않고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산기슭에 위패를 모시는 공원을 만드는 것이 타당한지도 말이다.

▲ 탑립동 돌탑
▲ 탑립동 돌탑
왜 하필이면 또 공원인가?=우리역사에 나타난 공원은 장충단공원(대한제국시기 을미사변으로 인해 순직한 신하와 장졸들의 제사를 지내던 곳)이 출발이 된다고 기억한다. 대전지역도 우암선생 고택 뒤 언덕 정상에 지어졌던 일본신사를 지으며 소제공원이라 했고 취금헌 박팽년유허지, 우암 송시열 별서였던 남간정사, 사당이었던 남간사 등이 밀집한 곳을 우암사적공원이라 이름하고 있다. 심지어 동춘당도 동춘당공원 안에 있다.

공원(Park)은 자유스러운 복장과 행동이 모두 허용되는 공간, 심지어 춤과 오락도 가능하며 스포츠도 가능한 공간이다. 심지어 시외로 통하는 도로변 3, 4층짜리 요란한 색상의 건물들 이름도 파크(Park)가 주류다. 그럼에도 우린 왜 선조들의 정신을 기리고 엄숙해야할 공간을 모두 공원으로 만드는데 열중하는 것인가. 오로지 먹고 마시고 흔들기만 하면 만사형통이라도 된단 말인가? 먹고 살만하니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오해도 보통을 넘는 수준이다.

사라지는 문화유산 지켜져야=유성구 상대동 원골마을 돌탑과 할아버지 탑도 도안신도시 건설과 함께 사라졌고, 대덕구 장동 산디마을의 상여집도 사라진지 몇 해가 지났다. 목동의 용왕제를 지내던 샘도 아파트의 건설로 사라졌고 거리제를 지내던 팽나무는 고층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견뎌낼 듯 했지만 2년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현재는 남동쪽 가지 하나만 매달린 채 모두 썩어 바닥에 떨어져 사라져 가고 있다. 장래의 문화재가 될 만한 역사가 있던 것들이 사라져 간다. 그런 것이 순리라면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문화재는 공원으로 꾸며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사라졌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오래 전 어린 학생이 미국유학을 황급히 털고 귀국하여 나를 처음 만났다. 학교에 단 한 명 뿐인 한국인인데 친구들은 한국음식, 한국음악, 한국무용이 뭐냐 채근하는 바람에 창피해서 도저히 있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국내의 중학교도 자퇴하고 유적지를 다니며 고민하고 가야금과 무술을 익히는데 열중하였다. 그렇게 한국인의 몸과 마음을 만든 뒤 그는 홀로 다시 유학길에 올라 한국의 외교관을 목표로 유럽의 대학들에서 인류학, 언어학, 외교학,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사라진 유형의 문화유산을 되돌릴 수 없지만 사라지고 있는 문화유산, 그 중에 한국인다운 정신을 되돌려야 하지 않을까 한다. 먹고 살만하니 마시고 흔드는 것이 당연하다면 말이다. 문화재구역에서 공원은 사라져야 할 진정한 대상인 것이다.

임헌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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