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원 국립대전현충원장 |
6·25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53년 일본은 한국의 혼란기를 틈타 무장순시선을 독도로 보내는 등 불법 점유 기도를 노골화했다. 이에 홍순칠을 비롯한 6·25참전용사들이 독도를 스스로 지키겠다는 의지로 굳게 뭉쳐 1953년 4월 20일 독도의용수비대를 결성하게 되었다.
독도의용수비대는 독도에 상주하며 독도 수호활동을 전개하였고 1956년 12월 국립경찰에 임무를 인계할 때까지 33인의 수비대원은 보잘것없는 무기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일본 무장순시선과 사투를 벌여 5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를 치렀고, 그 중 1954년 11월 21일 전투는 소총과 기관총 등의 부족한 무기를 가지고도 일본 중무장함 2척과 대적해 격렬한 전투를 벌인 끝에 완벽한 승리를 거둠으로써 일본의 독도 불법 무력 점령을 물리치는 업적을 남겼다.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에서는 이 전투를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이 배 13척으로 일본 수군 133척을 맞이하여 대승을 거둔 명량대첩에 비유해 독도대첩이라 명명하고, 목숨을 걸고 지킨 우리 땅 독도 수호정신을 국민에게 널리 알려 후세의 귀감으로 삼고 그 정신을 이어나가기 위해 독도의용수비대 결성 60주년을 기해 2013년 11월 21일 독도대첩일을 선포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국립대전현충원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거행된다.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 주관으로 11월 21일 독도대첩일 선포에 앞서 독도에서 물과 흙을 가져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 대원들의 비석을 닦아주고 묘소 주변에 물과 흙을 뿌리며 독도 모형을 기증하는 독도 수토 봉정식과 독도 모형 기증식이 거행된다.
국립대전현충원 사병2묘역에는 독도의용수비대 故 김병열 님과 故 이형우님이 잠들어 있다. 김병열 대원은 1950년 8월 다부동 전투에서 어깨와 다리에 부상을 입고 전역한 후 1953년 독도의용수비대 후방지원대장으로 활동했다. 이형우 대원은 1951년 금성지구 전투 중 다리 부상을 입고 1952년 전역한 후 1954년 독도의용수비대에 참여해 대원으로 활약했다.
그동안 수비대원들의 활약상이 잘 알려지지 않은 채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현재 9명만 생존해 있지만 올해 7월에 국립묘지법 개정으로 독도의용수비대원이 국립묘지 안장대상에 포함된 것은 대원들의 희생을 국가가 기억한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이분들의 희생정신을 계승하는 전기가 마련되었다.
구한말 백척간두에 서 있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항일의병운동이 일어났던 것처럼 독도의용수비대원 33명도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고 명예제대한 후 고향인 울릉도로 돌아왔지만, 또다시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살랐던 이 시대의 진정한 의병이었다.
독도의용수비대원은 먼 하늘나라에 가서도 독도 수호천사가 되어 줄 것이며, 국민은 수비대원들의 정신을 계승해 독도가 우리의 동해 품속에서 매일 아침 눈 부신 햇살을 받으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영토로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수호의지를 하나로 모아야 할 것이다. 지구는 멸망하지 않는 한 온 힘을 다해 달을 끌어안을 것이며 달 또한 지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멸망하지 않는 한 독도를 사랑할 것이며, 독도에 대한 사랑이 식지 않는 한 영원히 독도는 우리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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