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연서 공주신월초 교사 |
나는 교사가 되기 위한 마지막 면접에서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해 봄, 나는 합격의 기쁜 마음을 안고 첫 발령을 받았다.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컸던 탓일까! 학생들에게 무언가 쥐어주고 싶은 마음에 하나를 성취하면 둘을 기대했고, 질문을 하는 동시에 손을 들고 답하기를 바랐다. 교사의 목표치가 높다보니 자연스럽게 잔소리가 많아졌다. 꾸짖는 횟수도 늘어났다. 나는 아침자습시간부터 수업시간, 쉬는 시간, 청소시간까지 학생들이 눈앞에 보이지 않을 때를 제외하고 언제나 잔소리를 입에 달고 다녔다. 물론 부모님과 선생님의 잔소리는 기본적으로 관심과 사랑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과유불급! 뭐든 지나치면 모자란 만 못한 법이다.
말을 많이 하다 보니 갖가지 병이 목을 괴롭혔다. 처음엔 목소리가 변하고 점점 작아지더니 나중에는 아예 나오지 않게 됐다. 수업을 하기도 참 곤란해졌다. “이제 말을 못하게 됐으니 큰일이군. 떠드는 건 어떻게 조용히 시키며, 쉬는 시간 또 체육시간에 학생 관리는 어떻게 하지”하는 걱정을 안고 출근을 했다. 교실 앞 책상에 앉았지만 평소처럼 학생들 일에 하나하나 참견할 수 없어 입도 마음도 근질거렸다. 나의 잔소리가 없는 교실과 복도는 어느새 왁자지껄 우당탕 놀이터가 되었다. 며칠 전 이라면 우렁찬 목소리로 잔소리를 시작했겠지만 더 이상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걱정으로 한숨을 쉬고 있는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쉬는 시간이 지나 수업시간이 되고도 내가 아무 말이 없자 학생들이 하나 둘 씩 자리에 앉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친구 얼굴 한 번 내 얼굴 한 번 살피고는 자리에 앉아 교과서를 펼쳤다. 수업을 하면서도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평소보다 작게 이야기했는데 오히려 학생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내 말을 경청했다. 내 부연설명이 줄어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발표기회는 더 많아졌다. 또 필요한 말만 하다 보니 말에 실리는 무게도 더 무거워졌다. 학생들은 내가 말을 시작하면 귀를 세워 집중했다. 학생들의 이러한 변화는 그동안 집중 시킨다며 크게 소리치고 줄기차게 잔소리했던 나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내게 부족했던 것은 병아리가 충분히 성장하고 안에서 알을 깨고 나오려 할 때까지 기다렸다 함께 쪼아주는 여유 아니었을까?'
그 후론 잔소리를 하기 전에 꼭 한 번씩 숨을 돌리며 생각한다. 잠시 기다리며 학생 스스로 변할 기회를 준다. 그 잠시 동안 학생이 알아서 행동하면 잔소리를 할 까닭이 없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열 마디 잔소리를 단 몇 마디 말로 줄일 수 있다. 감기가 아닌데도 목이 따끔따끔 아파오면 가만히 나를 뒤돌아본다. 혹시 내가 내 말만하고 있는 건 아닌지 길게 늘어놓는 잔소리 속에 꼭 해야 할 말이 묻히진 않는지. 한 마디면 될 것을 열 마디 스무 마디 보태며 학생들 스스로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있는 건 아닌지. 교사의 성급한 욕심에 준비되지 않은 알을 쪼아 학생들을 억지로 꺼내려 하고 있지는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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