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C, 라이온스, 로타리, 청남클럽, 얼라이언스 클럽, 두레교류회 등 20여개 모임과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펼치며 오지 전문 여행사의 최강자로 등극한 사나이가 있다. '여행업계의 전설'로 불리는 이문행 야호관광(주)대표이사(47)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어릴때부터 '짱'으로 불렸던 친구들의 영웅, 의리파 사나이중의 사나이, 그로부터 여행업계의 전설이 되기까지 남을 도우면서 살아온 오지랖 넓은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 철로위에서 이문행 대표 |
이문행 대표이사를 만나면 동적이고 활달한 성격에서 에너지가 넘쳐흐름을 느끼게 돼 미지의 세계 곳곳을 발끝으로 클릭하는 여행사 대표로서 적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 이문행作 '낙타' |
이 대표는 대전지역 CEO들이 리더십 함양을 위해 조직한 CNC청남클럽 멤버로 활동하면서 재전부여고 동문회 부회장과 재전부여고 35회 동창회 회장, 대전시 관광협회 이사, 한국여행업협회 이사로 활동중이다. 여기에 중소기업 CEO들의 교류 모임인 두레교류회를 비롯해 그를 중심으로 12명의 멤버가 모여 새로운 여행을 추구하는 얼라이언스클럽을 조직해 신명나게 살고 있다. 한때는 모임이 32개에 이를때도 있을 정도로 오지랖 넓은 마당발 인생의 주인공이다.
▲ 이문행作 '데칼코마니 바다' |
여행업에 뛰어든 지난 25년동안 대전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진작가 동호회인 '백영회' 회원들과 오지여행을 다니게 된 것은 그가 후원하는 백제사진대전에서 입상하면서부터였다. 오지를 주로 찾아다니다보니 어려운 환경의 사람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캄보디아에 갔을때는 어느 노스님이 너무나 어렵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안쓰러워 스님에게 필요한 모든 물건을 사드렸다. 외국 현지에서 직접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소중한 인연을 쌓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상대방도 이 대표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될 때 즐겁고 행복해진다고 했다.
▲ 이문행作 '앙코르와트 스님들' |
▲가훈 겸 집안의 인사구호 '의(義)'=남자다움과 의리를 중시하는 그는 집안의 가훈 겸 가족간의 인사구호도 '의(義)'로 정했다.
그의 아들 두명은 귀가시에 '의'를 구호로 외치며 거수경례로 인사한다.
큰 아들은 공주사대부고와 해양대 유럽과 졸업후 군대에 입대했고, 외교관의 꿈을 키우고 있다. 대전중학교 3학년 학생회장인 둘째아들 원석군은 아버지의 제안대로 선후배간 폭력을 없애고 가슴과 가슴을 부딪히며 따뜻한 선후배지간이 되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전교생에게 프리허그 바람을 불러일으키며 당당히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
정의롭게 살자는 신조를 아들들에게도 대물림한 그는 어릴때부터 남자답게 살고, 남을 배신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말고, 신뢰와 의를 지켜야된다고 강조한다. 그의 좌우명이 재미있다. '열정이 없으면 차라리 죽어라'.
▲ 이문행作 '뱃사공' |
▲목소리 큰사람, 밥 빨리 먹는 사람=회사 운영을 해보니 목소리가 큰 사람과 밥을 빨리 먹는 사람이 책임감도 강하고 추진력도 좋았다. 그래서 그는 '목소리 큰사람'과 '밥 빨리 먹는 사람'을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꼽는다.
수많은 사람을 인솔해 여행을 다녀도 '군중속의 고독'은 피할 수 없는 법. 이런 고독을 피하기 위해 그가 찾는 방법은 바로 '독서'다. 여행지로 떠날때마다 꼭 책 한권씩을 갖고 다니면서 비행기 안에서 이동시간에 읽는게 습관이 됐다. 그는 이집트 신화와 그리스 신화 등 역사물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했다.
그가 야호 여행사 회장이자 중부고속 회장인 조성일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얻고 야후 사장 자리를 물려받았던 것처럼 의리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사장으로서 직원들을 살뜰히 보살피고, 격려하고, 사기를 진작시키는 일에도 열심이다.
▲ 이문행作 '수상촌 아이들' |
그는 87년 여행사 입문 후 유럽, 동남아, 중국 등 대표적인 나라의 여행 상품을 개발해 약 500여회의 인솔 경험을 갖고 있다.
그는 아프리카, 중국, 동남아 오지 소수 민족들의 삶을 직접 체험하고, 사진작가협회, 오지탐험가 등과 100여회 이상 탐험여행을 같이 한 특수상품 개발 전문가다. 중국의 장가계를 비롯해 세계 곳곳의 오지를 직접 발로 찾아다니며 상품을 개발해온 그는 오지 여행업계에서 최고 선두를 달리고 있다.
▲취미는 막노동(?)=부여 합송이 고향인 그는 4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국수공장, 기름공장, 떡방앗간 등 다양한 일을 하셨지만 워낙 챙겨야 될 가족과 친척들이 많다보니 늘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그의 형제들은 중학교때부터 돈을 벌면서 학교에 다녀야 했다. 그 덕분에 안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인 그는 여행사 대표를 하면서도 머리 아픈 일이 생기면 막노동판에 나가 머리를 식히고 온다. 합송초와 백제중, 부여고, 우송정보대 관광통역과를 나온 그는 취미가 오지여행과 사진여행이다.
97년 뉴금남관광(주)창립멤버이자 대표이사로 사장에 취임한 그는 99년 파오스코 무역을 창업해 사장에 취임했고, 2004년에는 야호관광(주)과 M&A(인수합병)를 거쳐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우리나라 관광산업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한가지에만 모든 것을 걸고 끊임없이 도전하며 승부를 걸고 살아온 그이기에 성공도 남보다 빨리 찾아왔다. 넓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모험과 탐험을 즐기며 도전하는 용기와 남에게 잘 베풀고 도울줄 아는 인정 많고 착한 심성이 그를 여행업계 최강자로 우뚝 서게 했다.
▲학창시절=초등학교 시절엔 푸른 하늘, 드넓은 구룡평야가 잘 내려다보이는 나지막한 산자락 시골마을에서 밤낮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계신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며 가슴 아파해야만 했다. 중학교 시절엔 우정과 의리야말로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의미로 생각하며 친구들의 영웅이 됐다. 고교시절엔 고란사와 낙화암,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을 보며 혼돈과 갈등과 번뇌속에서 시를 지으며 문학소년으로서의 사춘기를 보냈다
대학시절은 그가 노동의 쾌락과 막노동판의 행복을 느끼며 자유를 향해 더 큰 세상으로 발을 내딛는 계기가 됐다.
▲사회생활=20대 시절 인생이라는 넓은 싸움터에서 말 못하고 쫓기는 마소가 되지 말고 싸움하는 영웅이 되고자 노력했다. 통역 안내원 시험을 치렀고 수십개의 이력서를 냈다. 여행사에 취직해 석달에 한번씩 구두를 갈아야 될 정도로 발바닥에 땀나게 뛰어다녔다. 지금은 아내가 된 그 깐깐한 여자상사는 이 대표가 독립해 스스로 여행사를 차린 후 스카우트해왔다.
꿈을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해온 그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을 갖고 돈보다는 자존심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살았다. '부자'로 살기보다 '귀족'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그가 가진 것은 오로지 도전 의욕과 추진력 하나뿐이라는 생각에 이 대표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일만 생각했다. 두드려도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문은 그의 뚝심과 열정과 끈기에 의해 드디어 열리기 시작했다. 관공서 문을 뚫기 시작한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비바람 맞으며 태풍과 천둥, 벼락을 견뎌내야 과일이 붉어지듯 지금 겪고 있는 시련과 고통은 더 큰 세상, 더 큰 사람으로 가기 위한 과정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한 30대 시절을 거쳐 그가 얻은 교훈은 '안되는 것은 없다. 부딪치면 해결되더라'였다. 시작한 싸움은 반드시 이긴다는 신념으로 아무도 걷지 않는 미지의 새 길을 갈 때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는 이 대표에게 인생 최고의 선생님은 바로 조성일 야호 회장이었다. 지금도 그를 친동생처럼 아끼는 조 회장을 만난 것을 그는 최고의 행운으로 생각한다.
그는 97년 500만원의 창업 자본금으로 여행사를 차렸지만 곧바로 IMF를 맞았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속담처럼 여러 부류의 사람들 속에서 인생을 배우면서 남들이 하지 못하거나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을 앞장서 먼저 했다. 걸프전때나 사스때나 모든 역사의 현장에 그가 있었고, 남들이 그것을 위기라고 할 때 그는 신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실패를 통해 자신만의 솔직한 색깔을 만들고, 한창 잘 나갈때 더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게 됐다.
그는 2004년 그 당시 지역 최고의 여행사였던 야호 관광을 합병한 뒤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 국내 최고의 오지여행업계 강자로 등극하면서 여행업계의 전설이 됐다. 고객들의 주문에 절대 '아니오'라고 대답하지 않는 그는 시대의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는 원시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과의 만남 속에서 그릇된 문명인의 오만을 깨닫고, 도시의 밝음속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가난하지만 부자로 살아가는 사람살이의 근본을 알게 됐다. 그래서 여행은 이 대표를 꼼짝 못하게 꽁꽁 묶어버린 질긴 동아줄이다.
▲여행사를 경영하면서 느끼는 지혜=가장 깊숙히 뼈 속까지 느껴진 아픈 경험은 약이 된다는 것, 슬럼프는 쾌감을 동반한 노동의 고통으로 해결한다는 철칙이 있다. 그는 어려운 일일수록 흥미를 갖고 끝까지 느낄 것을 권한다. 원칙이 분명하면 절대 흔들리지 않는 그는 작은 것을 탐하지 않고, 목표는 이루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만큼 높게 잡고 도전할 것을 권했다. 여행사를 경영하면서 자신을 아껴주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할 것, 아들들에게 의연하고 당당한 아버지 모습을 보여줄 것, 가족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찾을 것, 그리고 행복은 자기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만큼씩 누리게 된다는 지혜를 깨닫게 된 그다.
▲앞으로의 계획=학자의 지고한 논리보다 길가에 핀 꽃 한 송이가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듯, 우리는 어쩌면 그러한 느낌 하나를 얻으려고 먼 길을 떠나는 지도 모른다.
이 대표는 완벽하게 '아무것도 묻지마 여행'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 체류형 프로그램, 해외여행과 국내여행의 중간 고객층을 위한 프로그램, 경쟁이 없는 이 대표만의 상품, 느낌과 체험여행 등 진정한 여행의 길을 추구하는 그다. 설렘부터 추억까지 책임지는 여행사를 이끌어나가면서 사랑과 우정에 대한 보상을 나누고 싶어하는 그는 잘 나가는 사업가보다 진정한 여행가가 되고 싶어한다.
여행업이란 특별한 직업을 통해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부자로 살아도 보고,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은 오지에서의 삶도 살아 보고, 깊이는 아니지만 이것 저것 많은 경험을 쌓으며 살아온 그는 앞으로도 긴 시간을 지금처럼 살면서 인생의 동반자이자 친구이자 멘토인 여행을 통해 더 큰 꿈을 꾸고 이루려 한다.
의리와 신뢰를 중시하면서 무슨 일을 하던지 당당하고 떳떳하게 하고 싶고, 또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그는 언제나 신뢰받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투자해 왔고, 그를 인정해주는 분들 덕분에 큰 자부심을 느끼면서 오늘도 오지를 향해 출발한다.
한성일 기자 hansung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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