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표 대덕대 총장 |
새 국회가 구성되고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서로가 목숨이라도 건 듯 '선진화'에다 '민생 우선' '복지경쟁'까지 무언가 달라지나보다 했는데 진영논리라는 수렁이 그렇게도 깊은지 국민을 포함한 '을'을 위한 대화와 타협, 양보와 상생은 어디 가고 물고 뜯고 할퀴기 경진대회라도 벌린 듯 정신이 나간 것 같아 보기에도 듣기에도 민망할 뿐, 아이들 보기가 부끄럽고 짜증스러웠다.
구태에 얼마나 신물이 났으면 무엇에 홀린 듯 뜬구름 같은 '새정치'라는 말에 갈채를 보내고, 실체도 보지 못하면서 열광을 할 무렵 기성 정치권은 제 발이 저려서 인지 경쟁적으로 지금까지의 기득권을 모두 내려놓고 잘 한다고 했다. 다른 것은 다 그렇다 치더라도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기상천외한 선진화 법이라는 덫에 걸려 식물 국회 만든 것 모자라 문 닫아 놓고 주먹질 하고, 걸핏하면 '링' 밖으로 나가 하늘에 삿대질이다. '너'와 '나'는 대화의 상대이지 적이 아니다. #과 ♭의 조화를 이루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가장 좋은 태교는 뉴스를 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국민이 원하고 급한 일이라도 내 생각과 다르면 소용이 없다. 적이 아닌 우리로 국민을 쳐다보면서 치열한 논쟁과 토론으로 합일점을 찾는 것이 상식이거늘 어제 한 일도 되짚어보지 않고 상호 비난, 비방에 떠넘기기 일쑤다. 물론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그 다른 것을 용광로에 녹여내는 것이 협상이고 정치력 아닌가. 정부가 일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존재이유다. 그런데도 여당과 야당은 서로가 '네 탓' 뿐이지 '내 탓'은 없다. 자기들의 진정성은 들여다 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서로가 불통이라면서 저질의 말과 저급한 행동으로 공격 일변도다. 국민의 삶이 아무리 고단하고 팍팍해도 진영만 있고 국민은 없다. 서로 평온한 모습으로 얼굴 맞대고 전부(全部 oll) 전무(全無 nothing)가 아닌 것을 찾으려는 노력을 보이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가. 진정 연목구어(緣木求魚)란 말인가.
범부(凡夫)들도 초심으로 돌아가 처음처럼 이란 말을 자주 되뇐다. 제발 국민을 가르치려 하지 말라. 할 일은 태산 같고 시간은 없는데 억지만 난무한다. 누가 무엇을 잘못하는지 너무도 잘 안다. 의석을 더 달라고 하면서 내려놓겠다고 했던 것들 미련 두지 말고 내려놓는 일 먼저 하라. 선진화가 아니고 후퇴라면 법도 고쳐야 한다. 다수 의석 차지하려다 어지럽힌 일도 정중하게 사과하는 것이 옳다. 국민에게 사랑받을 일 실천하면서 거듭나야 한다.
겨울나무의 잎 내림을 보면서 어떤 색으로 물들여 무엇을 얼마나 수확했고 준비하면서 희망의 봄을 기다리려고 하는지 써놓은 일기장을 보고 싶다. 일부이긴 하지만 입버릇처럼 민생우선 국정감사 한다 해놓고 있는 증인 없는 증인 마구잡이로 불러 놓고 고성, 폭언도 모자라 호통 치면서 모욕 주는 일이 다반사였다. 결국 정책은 실종되고 정치공방 춤만 춘 꼴이었다. 정말로 없어져야 할 구태고 사라져야 할 망령이다. 그것도 현 정부 첫 국정감사였다. 부실 '갑' 질에 나선 질책 감사 였다. 오죽하면 '물에 빠진 사람 중 오염 때문에 국회의원을 제일 먼저 구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생겨났을까.
그래도 스스로 천막 걷고 들어가는 성숙함에 한숨 돌리나 했는데 보이콧이고, 불복은 아니라면서도 승복이란 말에는 인색하다. 선의의 경쟁을 하자고 해놓고 '링' 밖에서 연대 타령이다. 작아도 진정성의 리더십으로 큰 정치를 보고 싶다. 쟁점화 되어 있는 것도 기다려 보면서 할 일 하는 그런 정치를 원한다. 정쟁은 정쟁이고 일은 일이다. 우리 사회에 '갑과 을'의 관계를 개선한다면서 정작 본인들이 '슈퍼 갑 질'을 하고 있다. 분명 국민이 '갑'이다. 인내심을 같고 선의의 경쟁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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